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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약속

by 답설재 2017. 10. 21.






약 속










  노란 차 옆, 다정한 남녀를 피해 걸어가고 있는 저 구부정한 늙은이가 내 친구입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오는 중입니다. 

  돈도 제법 많고 명예도 자랑할 만하지만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고 그보다 더 명예로운 사람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표를 내진 않습니다. 그에게는 그게 자랑거리가 되는 건지 회의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집을 옮겼습니다.

  새로 들어갈 집을 짓는 사람들이 건축이 완성된다는 장담과 홍보에 맞추어 이쪽 집을 비우고 이사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새 집을 짓는 사람들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속을 많이 끓였습니다.


  '머피의 법칙'을 얘기했고, 한국에서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해야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아무래도 주제넘은 일 같아서 그 말을 하는 대신 두말없이 저녁을 샀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쪽에서 한 턱 내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머피의 법칙 같은 건 없습니다."

  "…………."

  "괜히 생각일 뿐이고 실제는 아닙니다."

  "…………."

  그는 내 말을 순하게 듣는 것 같았고,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럭저럭 나이도 좀 먹었으므로 울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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