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나를 엄살이 심한 인간으로 규정했습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 걱정은 하지만 차도가 보이면 곧 "걸핏하면 엄살을 피운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핀잔을 듣기가 거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웬만하면 몰래 약을 먹기도 하고 좀 참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이가 아프고 시리기 시작한 건 지난 추석 때부터였습니다. 당연히 그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상하좌우의 큰어금니 두 개 중 한 개씩은 오래전에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좀 섭섭해서 의사에게 질문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 의사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습니다. "뭘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 양반을 봤나!') 나도 되물었습니다. "임플란트를 한다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의사가 또 되물었습니다. "어금니가 하나씩 없으니까 많이 불편합니까?"('혹 "죽을 것 같습니까?' 하고 묻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니, 뭐 특별히 불편한 건 없고 사탕을 먹으면 이리저리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녀서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식사 같은 걸 하는 데는 크게 불편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그냥 지내셔도 좋을 듯한데……. 사탕은 먹지 않아도 되고……."('곧 죽을 건데 치아까지 잘 챙기고 싶어요?' 묻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전에 동네 치과에서는 그냥 두면 그 옆의 치아가 쓰러진다고 하던데……."
"그거야 그렇게 눕지 말고 일어서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 ……!"
"인프란트를 하면 병원 측에서는 돈을 더 많이 벌고 좋을 텐데요?" 하려다가 그건 주제넘은 참견일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동안 그 의사는 한 개씩 남은 큰어금니가 말썽을 부리면 당장 제거해버리자고 하다가 그 통증이 다시 가라앉아 내가 미련을 보이면 그럼 몇 달 더 쓰라고 유예기간을 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위 왼쪽 작은어금니 두 개가 합동으로 시리고 아프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큰어금니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작은어금니 문제는 일단 덮어두기로 '개인적인' 판단을 해버렸고 시리거나 말거나 아프거나 말거나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연히 그 통증 때문에 저절로 인상을 쓰게 되는 일이 잦게 되고 아내는 더러 그렇게 찌푸린 인상을 발견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왜 그래요?"
그럴 때마다 별 건 아니고 늘 말썽을 피우던 치아가 아주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이가 좀 아프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내 대신 결단을 내렸습니다.
1. 병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2.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일단 고칠 건 고쳐서 살아야 한다.
3. 연금이 동결되어 경제적으로 난처하긴 하지만 다른 비용을 절약하기로 하고 이번에 아주 다 빼버리더라도 끝장을 내야 한다.
마침내 치과에 가서 작은어금니 문제를 꺼냈고 새로운 의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보존과 의사였습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참은 끝에 일단 오늘은 끝났다며 물었습니다. "아팠습니까?"
'그까짓 걸 뭐' 싶어서 당장 호기롭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신경이 다 죽어버려서 마취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죽은 신경을 그냥 확 다 긁어내버렸습니다."
"!……." 순간 참 시원한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의사는 일주일 후에 신경관 충전을 하게 되고, 또 일이 주쯤 후에는 치아 구멍을 메우겠다고 했습니다.
일은 이렇게 번져 가는 것이고, 멀쩡한 치아는 거의 없으므로 이놈의 치아 때문에 그 병원을 앞으로 몇십 번을 드나들어야 할 것인지, 다른 병 때문에 가는 횟수를 줄일 수도 없는 일이니 살아간다는 게 뭔지…….
한 가지 증명이라고나 할까, 아내에게 보여준 것은 나도 그렇게 엄살이 심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밖에 시원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