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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미련

by 답설재 2017. 12. 13.






미 련











  이렇게 앉아 있다가 문득, 정리된 게 아무것도 없고 정작 무얼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조차 없는 삶이었지만, 지금 떠나야 한다면 기꺼이 그 사자(使者)를 따라나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생각나는 건, 내 것으로 되어 있는 물건들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좀 버려주면 그만이고, 긴요한 건 일찌감치 마련해둔 그 공동묘지 납골당 문제인데 이제 와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산뜻하게 수목장을 해달라고 할 만한 근거를 마련해놓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 선뜻 '이승을 떠나게 되면 꼭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무슨 여행지 선택하듯 호감을 느낄 만한 곳이 나타나기가 그리 쉽겠는가.

  이 저녁에 이렇게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책을 좀 읽다가 하는데, 거실에서 TV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끊임없는 시사토크……. TV 앞에 앉는다면 심각해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무슨 얘기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역 대합실 혹은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벽에 붙어 있는 TV에서 볼 수 있는 방송처럼 '무심하게' '남의 일처럼' 들리는 그 소리가 마음을 오히려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느낀다.


  나를 탐탁하게 여기는 것은 언제나 순간일 뿐이긴 하지만 그 TV를 아내가 보고 있기 때문일까?

  세상은 여전하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가 '무심하게', 얼마쯤은 '아늑하게' 혹은 '남의 일처럼' 들리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이런 느낌의 세상이라면, 조금 더 살아도 괜찮겠지? 싶어진다.

  이 저녁에 나는 또 실없는 미련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 살아가자……. 무슨 특별한 의욕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그저 주어진 시간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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