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허!" "하이고~"…

by 답설재 2017. 12. 30.

 

 

 

 

 

 

    1

 

앉았다 일어선다든가 자동차에서 내릴 때, 무슨 물건을 들 때, 어쨌든 몸을 좀 움직일 때 흔히 그런 소리를 냅니다. 요즘 나이로는 늙은이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꼴 같지 않게 지병을 얻은 후에 이렇게 된 것인데, 아내는 그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는 나나 듣는 쪽이나 버릇이 되어서 듣는 쪽에서 귓전으로 들을 땐 별 반응이 없지만 의식적으로 들을 땐 즉시 한 마디 합니다.

"저런 소리 좀 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아이, 듣기 싫어!"

 

 

    2

 

그럴 때는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면 "파이팅!" 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하나 둘 셋!" 하고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드는 것과 같다고 때마다 말을 바꾸어가며 변명합니다.

웃기는 설명이죠. 그러나 아내는 웃지 않습니다.

 

 

    3 

 

교사가 되어 처음 찾아간 학교에서 만난 K 선배는 후리후리해 보이는 몸매로 운동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부인이 까다롭게 굴고 걸핏하면 성질을 내는데도 늘 웃었습니다. 다만 곧잘 "휴~" "으으~" 하고 한숨을 쉬거나 앓는 소리를 냈습니다. 배구를 할 때 공을 받고 나서는 백 번이면 백 번 꼭 "휴~" 했고(냅다 후려친 공이 곧장 그 자리로 다시 온다 해도 일단 "휴~" 하고 난 뒤 받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고), 달리기를 했다면 골인 지점에 이르러 틀림없이 "으으~" 신음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5년 간인가 함께 근무했는데 그때는 그런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았습니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저런 소리를 자주(규칙적으로) 내는구나,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헤어져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저런!' 그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잔소리를 좀 자주 하던 그 부인이 생각났고 "휴~" "으으~" 하던 그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4

 

아내가 "저런 소리 좀 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할 때마다 K 선배가 생각납니다.

'이러다가 나도 일찍 죽는 건 아닐까?'

이 글을 쓰자고 생각했을 땐 '좀 코믹한 글이 되게 하자' 싶었는데 짧은 글인데도 쓰는 중에 그만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어~허!' '하이고~'……

이젠 마음속으로나 그럴까? 그런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파이팅!"이나 "하나 둘 셋!"을 해야 할 때 아예 생략하는 건 아무래도 김이 빠지는 꼴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하는 건 하는 거니까 일찍 죽는 것에는 지장이 없…… 아니 아니 일찍 죽을 운명을 거스르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면?

이 정도 나이라면 평균수명으로 따지면 뭐 그렇게 일찍 죽는 것도 아니긴 해서 지금 나는 그만 께름직한 느낌에 싸여 있습니다. 코믹을 염두에 둔 건데 기분이 영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텔레비전이나 보기  (0) 2018.01.14
"죽음은 져야 할 짐이고…"  (0) 2018.01.07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0) 2017.12.25
미련  (0) 2017.12.13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0) 201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