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by 답설재 2017. 12. 25.

 

 

    1

 

주말 신문에서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이라는 대담 기사를 봤습니다.1두 면에 걸친 기사를 부담스러워하다가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라는 소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할 때 유족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염할 때 참여하시라고 권합니다. 마지막엔 얼굴 보고 만져 드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울음은 전염됩니다. 고인 수의에 눈물 떨구는 거 아녜요. 그럼 무거워서 못 떠납니다.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히니까."
―무슨 뜻인가요?

"1996년에 말기 암 환자 두 분을 염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부자였고 한 분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자는 인상을 쓰고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표정이 맑았습니다. 알고 보니 돌아가신 뒤에 유족이 좋은 말만 하고 염불도 들려 드렸대요."

 

 

    2

 

"얼굴 보고 만져 드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울음은 전염됩니다. (…)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히니까."

귀가 제일 늦게 닫힌다는 건 정설인 것 같습니다.

 

죽음에 관해서라면 지금까지 본 책 중에서 가장 적나라하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죽음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죽음이야말로 무엇보다 실제적인 과제라는 걸 일깨워준 책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오츠 슈이치)에서도 그렇게 쓴 부분에서 한참 생각하였고, 결국 잊히지 않게 된 내용이 그것이었습니다.

 

둘째('여명 시간 단위'에서 가족들이 꼭 기억해야 할 사항 두 가지), 환자의 청각은 마지막까지 기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여명이 일 단위가 되면 환자는 아마도 고통에서 벗어나 꿈꾸는 듯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반면 외부의 소리는 확실히 들린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여전히 환자가 괴로워 보일지 몰라도, 또 말을 걸어도 거의 반응이 없기 때문에 곁에서 지켜보기 힘든 시기지만 마지막까지 환자의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큰 소리가 아니라 귓전에서 상냥하게 말을 거는 것도 좋다. 손을 잡아주거나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행동도 저세상으로 떠나는 환자의 발길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38~39)2

 

 

    3

 

오츠 슈이치의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이 내용을 어떻게 하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정말' 우스운 생각이지만, 이 어리석은 생각을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그나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고 다 나에게 달린 문제라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이미 다 알 것입니다. 그걸 나는 여기까지 와서 겨우 몇 시간 전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것조차 논리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이고 졸렬한 내가 싫습니다.

가련합니다.

 

 

 

........................................................

1.조선일보 2017.12.23. B1 [Why]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2/2017122201642.html
2.오츠 슈이치 지음, 박선영 옮김『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21세기북스, 2011)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은 져야 할 짐이고…"  (0) 2018.01.07
"어~허!" "하이고~"…  (0) 2017.12.30
미련  (0) 2017.12.13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0) 2017.12.10
'일상(日常)'  (0) 201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