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설날' 혹은 '새해'

by 답설재 2020. 2. 1.

 

 

 

 

 

1

 

섣달그믐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여행단을 따라가다가 일행을 놓쳤는데 희한한 여성 집단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식사비 일체를 내가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기가 막혀하는데 그 집단의 대표인 듯한 여성이 식사를 시작하려다가 기꺼이 식사비를 내겠다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결코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그 수십 명이 모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

 

특히 섣달 그믐밤에는 좋은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평생 그런 기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새해 새벽에 좋은 꿈을 꾸면 일 년 내내 행복할 것이라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앞두거나 섣달그믐쯤이면 좋은 꿈을 꾸라는 덕담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건 징크스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징크스?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惡運)으로 여겨지는 것.' 혹은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

그건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심리적 작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런 정의(定義)에 기대어 부정해버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3

 

올해의 설날에도 마음이 참 복잡하고 착잡하고 어지럽고 어려웠고 가난하고 누추했습니다.

쓸쓸하고 썰렁했습니다.

많이 지껄여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말도 하기 싫었습니다.

 

아내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억지로 데려와서 이 고생을 시키고, 고생이라면 완벽하게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지 싶어서 덧붙이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나, 나의 '현주소', 나의 마음인 것입니다.

 

 

4

 

다 잊고 돌아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는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지프의 신화"도 여러 번 읽었으니까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하느님, 아니면 부처님? 아무튼 그 무엇이 있어 나에게 이런저런 일을 다 보여주는 것은, 이런 것들을 골고루 겪게 함으로써 세상이 이런 곳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가라는 뜻이므로 나는 그걸 고맙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징크스' 따위일 수는 없습니다.

나의 것, 나의 세상은 본래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하며 지낼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무너진다 해도 그게 남아 있는 시간까지는 온전한 정신을 갖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 그 선수는 오늘 경기의 우승으로 큰 대회에는 약하다는 징크스를 깼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의 성격 유형별 특징  (0) 2020.02.09
토끼몰이  (0) 2020.02.06
할아버지의 사전  (0) 2020.01.26
세상의 아침  (0) 2020.01.24
암인가?  (16) 202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