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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토끼몰이

by 답설재 2020. 2. 6.

 

 

 

 

 

엊그제 저녁의 눈이 아직 저렇게 앉아 있습니다.

창 너머 저 풍경이 사라져 간 겨울 달력의 풍경화 같습니다.

여섯 장 혹은 열두 장 달력들은 동양화로 꾸며지거나 한두 달 유명한 배우 사진을 볼 수 있도록 꾸며졌고 더러 비키니 차림의 예쁜 사진도 있었습니다.

이러고저러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토끼몰이도 생각납니다.

육십 년은 훨씬 넘었고 칠십 년이 되어갑니다. 아, 참…….

토끼들은 아이들의 함성 때문에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용감한 아이는 그럴 때 표가 났습니다.

와락 덤벼들어 붙잡으면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선생님이 나타나 그 아이를 칭찬하고 토끼를 받아갔습니다.

나는 교실에선 어쩔 수 없이 표가 나는 아이였지만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표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토끼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부디 내 앞으로는 오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와~ 와~……."

아이들과 함께 포위망을 좁혀 가면서도 토끼가 이쪽으로 올 것 같은 느낌이면 얼른 다른 아이 곁으로 다가가서 누가 붙잡아야 할지 애매한 위치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했습니다.

그 토끼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내 마음은 알아줄 것 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토끼몰이는 그동안 그 함성과는 다른,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었는데 오래되어 색이 바랬는지 이젠 괜찮아졌습니다.

저 나무 그늘들은 얇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쯤 토끼 몇 마리가 내려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젠 그리 궁금하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그 산토끼들은 내 마음속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는 다행히 서로의 관계가 멀어져서 토끼는 토끼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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