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집으로 돌아온 트럭

by 답설재 2020. 2. 13.

 

 

 

 

1

 

녀석이 2017년에 가지고 놀던 트럭입니다.

모양은 저렇게 단순한데 온갖 소리를 다 냅니다.

여기를 눌러도 저기를 눌러도 소리를 내고, 그게 또 각각 달라서 어디를 누르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나는 아직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건드리기만 하면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2

 

녀석은 그즈음 트럭에 꽂혀 사달라고는 했지만 저걸 처음부터 그리 신기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가게에는 적당한 게 눈에 띄지 않아서 저걸 사다 준 것인데 어디로 보나 좀 유치하다고 할까, 어쨌든 처음부터 시큰둥하고는 2018년, 2019년, 어쩌다 한 번씩 툭 건드려 보면서 '내가 이것도 갖고 놀았지' 하는 표정일 뿐이어서 이번에 여러 가지를 '과감히' 정리하면서 '미련 없이' 내다 버렸던 것이고, 그래서 저렇게 플라스틱 재활용품 신세가 된 것이었습니다.

 

 

3

 

내가 저렇게 던졌을 때도 저 트럭은 또 무슨 소리를 냈습니다.

무슨 놈의 건전지가 4년째인데도 그대로냐, 하며 바라보았는데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아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듣게 된 그 소리를 다 듣고 돌아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봐라! 금방 어떤 젊은 부부가 지나가다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저 운전기사를 보게 되었고, 트럭의 어디에 손을 댔는지 남편이 작정하고 앉아서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 앙증맞은 저 물건을 집어 들고 한참 동안 요기조기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미 저기쯤 가고 있던 부인이 뒤돌아보며 뭐라고 하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게 들여다보던 그는 잠시만 장난감에 빠져 있었던 아이처럼 얼른 그 자리에 놓고 뛰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이다!'

나는 얼른 되돌아갔습니다.

'큰일 날 뻔했네!'

당장 집어 들었습니다.

 

 

4

 

트럭은 지금 진열장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 녀석이 와서 잠깐 '이게 이젠 여기 들어가 있네?' 하는 표정이더니 시큰둥 또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저 트럭이 오랫동안 우리 집 진열장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雨水 日記  (0) 2020.02.21
황인숙 시인이 본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0) 2020.02.16
노인의 성격 유형별 특징  (0) 2020.02.09
토끼몰이  (0) 2020.02.06
'설날' 혹은 '새해'  (0) 20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