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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2015년, 불안하고 초조했던 날들의 꿈

by 답설재 2015. 4. 1.

 

 

2015.1.1(목). 새벽.

 

아직도 학교 그리고 계획 이야기

 

멋진 양수용 책상 앞에 교감인듯 한 이가 서 있다. 연간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그에게 수정에 필요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나는 교사 신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권위가 좀 있는 입장이어서 그도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계획서는 일반적, 전통적인 모양새와 달리 표 안에 다시 사진과 도표들도 들어 있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조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고 내용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또 살펴보겠다고 하자, 그는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태도로 보아 "당신이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실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인가? 그래서 이런 꿈을 꾸는가?

그러다가 장면이 바뀌었다.

무슨 007 시리즈에 나오는 원형 좌석의 중간쯤에 서 있던 선배 K 장학관이 지나가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묘지기를 하지 그래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장 대답을 내놓았다. "묘지기요? 성군, 성웅의 묘지기인들 제가 만족하겠습니까?"

그러자 조금 떨어진 그 언저리의 어느 곳에서 N 장학관1이 또 물었다. "그럼, 우복동2 묘지기는 어때요?"

"우복동요?"

"죽고 또 죽고 끝없이 죽어도 그것이 끝나지 않는……"

나는 꿈속에서 현실로, 깨어나 나오며 아무리 그래도 묘지기는 싫다는 완강한 뜻을 나타내었다.

 

 

2015.1.14(수).

 

외로운 눈물

 

"내가 이 나이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옷소매를 적셔야 하겠습니까?"

연수생들(현장 교사들) 앞에서 스스로도 비장감이 느껴지는 말을 하고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나는 지금까지 "획일적 교육", "단편적 지식 주입 교육", "오지 선다형 객관식 평가 중심 교육", "대학 입학 준비 위주의 교육", "교과서 내용 전달 중심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이런 교육으로는 창의력, 사고력, 문제 해결력 같은 삶의 핵심 역량을 길러줄 수 없으며, 이런 교육으로는 국가는 물론 개인의 교육 경쟁력을 높일 수도 없고, 이런 교육은 일찍이 앨빈 토플러가 "시간 엄수·복종·반복 작업"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 시대의 공장 모형 교육"이라며3 그 폐단을 지적했던 그때의 그 상태에서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해 왔는데, 이 나라 교육계에서는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해 아예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있는 것이어서 드디어 나는 '사실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현직에 있을 때는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으며,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잘못을 범한 것인가? 이제 여기까지 와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엄습하는 온갖 걱정과 두려움, 외로움을 억제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지난 5일(월)부터 5일간, 이어서 12일부터 5일간, 각 30시간씩 초·중·고 교사 및 전문직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교과서 연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를 진행했고, 제1기와 제2기 첫날에는 스스로 '교사와 교과서'를 주제로 2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12일의 강의를 끝낼 때쯤 질문을 받았더니 어느 고등학교 교사 한 명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별도의 자료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

그 교사의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그럼 두 시간 동안 제가 이야기한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되묻지는 않았다. 그 교사는 내 설명을 아주 열심히 들었고, 그렇다면 다른 교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맥이 풀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침착하게 "그렇다"는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내심 큰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고('이 교사는 두 시간 동안 무얼 들은 것일까?'), 그 충격이 이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았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아니, 삶이란 이런 것인가?

 

 

2015.1.25(새벽)

 

청천산

 

어느 산에 이르자 갖가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다.

좀 모자라는 듯한 아들을 고쳐보려는 듯 무어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남자도 보였다. 왼쪽 산기슭으로 내가 지나가려는 비탈진 곳에 지어진 집의 댓뜰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소년이 약을 닳이고 있었는데 왠지 게름직해서 다시 이쪽 아래의 방천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 길에서 어쩐지 반편이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인사를 하고 보니 수학과 K 선생이었다. 민방위복에 무슨 완장을 차고 자신도 나처럼 청천산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었다. 마침 두 명의 지인이 또 나타났는데, 내가 K를 소개하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장면에서 아내가 잠을 깨웠다.

청천산이라니, 靑天山……

잠을 자면 당연한 듯 꿈을 꾸는데 깨어나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일부이다. 모자이크의 일부처럼.

 

 

2015.1.27(밤).

 

편수관 출신들이 보여준 세 가지 모습

 

좀 서먹서먹한 사이인 지인의 전화가 연결되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아이, 재수 없어. ○○ 좀 바꿔 줘."

전화기가 놓여 있는 그 책상은 그와 내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황당한 일이지만 아내가 전화를 받을 땐 설마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바로 옆 테이블 위에는 온갖 물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것들 중에는 무슨 기계적인 부속품 같은 것들도 보였다.

그 테이블의 이쪽저쪽에 서 있는 아버지와 딸은 나에게 판박이로 닮은 눈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는 고양이 눈처럼 이렇게 서로 닮지 않았습니까?"

세 번째 테이블에도 두 명이 붙어 서 있다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확인하는 말을 건넸다.

이렇게 세 팀은 모두 교육부 편수관 출신이라고 했다.

 

 

2015.2.4(수). 아침.

 

변기 청소

 

변기 같은, 사기로 된 물건의, 면과 면이 닿은 홈을 닦고 있었다. 흙이 묻은 곳을 애써서 닦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죽었어?"

 

 

2015.2.5(목).

 

분석

 

아이들 수업 시간표 모양의 칸막이 안에 하나씩 쓰인 문장들을 읽으며 그 형태를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어미(語尾)가 구구각색이어서 문장이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작업 같았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깨어났더니 새벽 두 시경이었다.)

'코발트 불루'가 있지 않느냐며 그 색을 강조하고, 그 색을 기준으로 하여 색깔이 조정되어야 하고 순서가 결정되어 가로로 나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물들은 그런 식으로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있었다.

(아내가 깨워서 일어나 앉아 꿈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2015.2.12(목)

 

대학원 수업

 

대학원 수업을 하려고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앞자리에 교육부 K 실장도 앉아 있었다. 수강생들을 둘러보며 아직 학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왔느냐고 묻고 "어떤 수업인지 궁금해서 미리 알아보려고 왔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모두들 그렇다고 대답했다.

K 실장은 고위공무원이 되었으니까 퇴임하면 대학에 3년간 강의를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학위를 받아두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구나 생각했고, 혹 이미 학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날짜는 다가오고 강의에 대한 걱정이 쌓여서 이런 꿈을 꾼 것이다.

 

 

2015.2.14(토). 아침.

 

대청소

 

여 선생님 몇 분과 아이들이 대청소를 하느라고 부산하다.

나는 내 물건을 찾으려고 버려진 옷과 신발을 확인하고 다닌다. 짐짓 내 물건을 꼼꼼하게 챙기지 않는 대범한 성격인양 그렇게 한다.

교직생활에 지친 나에게 온갖 보약을 챙겨주며 누님처럼 대하던 K 교사도 그 엣날 그때처럼 말없이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키가 좀 작은 편인 어느 여 교사가 나도 잘 아는 어느 분의 말을 전한다.

"선생님은 만나는 분이 워낙 많아서 '해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아내가 깨워서 일어났다. 내일은 설날이다. 음력으로 치면 오늘이 세모(歲暮)다.

 

 

2015.2.20(금, 설 이튿날).

 

외로운 용사(勇士)

 

커다란 나무 아래의 앞쪽으로 반원형 결투장이 마련되어 있고, 그 결투장 가장자리로는 낮은 둔덕으로 둘러져 있는데 그 둔덕을 경계로 구경꾼들이 둘러서 있었다.

용사는 그 결투장 안에서 도전자를 맞아 싸우게 되었는데, 허리를 묶은 밧줄이 그 커다란 나무에 매여 있었으므로 마치 사나운 개가 묶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용사는 워낙 잘 싸워서 그렇게 해야 공평하다는 것이었고, 그 용사도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나로서는 불안하고 불공평하다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일본 선수인 듯한 도전자가 용사와 동시에 기합을 넣으며 맹렬하고 과감하게 다가가 용사의 얼굴을 할퀴었고, 그의 손아귀가 용사의 얼굴 가죽을 쥐어뜯은 것 같았는데, 소스라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보니까 그건 용사의 가면이었다.

설 이튿날 아침이었다.

 

 

2015.3.4(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야 하고 가파른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야 하는 길이 너무나 싫어서 어느 주택 마당을 가로지르는 길을 찾았더니 막다른 길이었고, 그 옆으로 통과하려고 했더니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었다. 길이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러다가 아이들 서너 명이 둘러앉아 그 길을 멋진 그림지도로 나타내고 있는 곁을 지나게 되었다. 넓게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길이었다. "완벽한 도로"라는 작명을 해주고 보니까 그럴 듯한 이름이 아니었다. '완벽한 도로'라니… 그렇게 해놓고서 그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길은 어디로든 다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길을 승용차를 타고 달리는데 맞은편 자리에서 여동생 S가 도로명을 겹글자로 쓰고 있었다. '○○도로'의 '도로(道路)'는 한자로 쓰고 있었는데 제법 능숙한 솜씨였지만 그 두 글자 다 획을 잘못 쓰고 있었다. 내가 그걸 지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역시 잘못 써놓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사실은 여러 장면을 잊어버린 것이다. 기억나는 꿈이란 거의 언제나 이렇다.

누군가 J 이사장의 안경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런 행위를 살아가는 방편으로 삼는 사람이다. 또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 여선생님과 장난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되겠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입을 닫았다.

 

 

2015.3.5(목).

 

암초 혹은 사면초가

 

꿈자리가 어지럽다더니 요즘이 그렇다.

양쪽 유방이 거대한 문어 대가리처럼 합쳐지고, 더구나 그 앞부분을 얼마나 단련시켰는지 굳은살이 박여 그 유방을 흔들며 다가들면 나 같은 건 당장에 쓰러져버릴 것이 분명한 여인이 위협적인 표정으로 흉측한 미소를 띠우고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뚫고 나가야 하는데 길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어디로든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뛰어나가자 그 앞으로 개울물처럼 검은 액체가 흘러 앞을 막기 시작했다. 그 액체는 황산 같은 독극물이어서 몸에 닿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아내가 여러 번 불러 깨우는 소리를 듣고 겨우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마 첫새벽이었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그렇고 꿈자리가 그런 걸 어떻게 할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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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0년대에 교육부 공보관실에서 '문교월보' 제작에 참여하던 장학관
  2. 우복동[牛腹洞] [민속] 경상북도 상주(尙州)와 충청남도 보은(報恩) 사이에 있다고 하는,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는 상상 속의 마을(DAUM 사전에서).
  3. 『제3의물결』(앨빈토플러,유재천역,주우,1983,24판,49쪽) ‘공장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대중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산수(算數)를 중심으로 해서 역사와 그 밖의 과목도 극히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교과과정일 뿐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교과과정이 있었는데 이것이 산업사회의 기반으로서 훨씬 중요했다. 이 교과과정은 세 개의 덕목(德目)으로 되어 있다. 대개의 산업주의 국가에서는 지금도 이 세 가지가 덕목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시간 엄수, 둘째 복종, 셋째는 기계적인 반복작업에 익숙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