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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대실망-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도 없는 세상

by 답설재 2015. 3. 19.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이라는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아마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과 무관한 환경이 가하는 불행이고, 둘째는 다른 인간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환경이 가져다주는 불행? 바로 '천재지변' '쓰나미' '화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인간들이 인간들에게 가하는 불행에 대해서는 '그래, 맞아!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인간 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었고, 드디어 '세상의 한 단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 뻔했구나!' 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에 대한 '대실망(大失望)', 혹은 새로 생긴 좀 익살스러운 용어로는 세상에 대한 '급 실망(急失望)'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36쪽으로 번역된 그 글 중에서 꼭 옮기고 싶은 두어 군데를 고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오늘날 인간이 맞닥뜨린 최악의 적은 바로 인간"이라는 구절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단자를 공개 화형에 처하던 시절,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이따금씩 이단자들 가운데 특별히 모범적인 변론을 한 사람에게는 불을 붙이기 전에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를 베풀곤 했다. 이러한 경우에 군중이 어찌나 사납게 분노했던지, 당국은 회개한 이단자를 집단 폭행하고 직접 불태워 죽이려 하는 군중을 막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사실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군중으로서는 불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희생자를 구경하는 일이야말로 으뜸가는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는 일이 옳은 행위라는 일반적인 믿음에 이러한 즐거움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똑같은 논리가 전쟁에도 적용된다. 활동적이고 거친 사람들은 아군이 우세할 경우에, 또 강간이나 약탈 같은 비행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경우에 종종 전쟁을 즐거운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옳다고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부분을 처음에 읽을 때는 '리스본? 스페인 얘기야? 그 나라에서는 그런 잔인무도한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게 몇 년 전 일일까? 어쨌든 이미 다 지나간 일이 아닌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고, 전쟁에 대해서도 '참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은 요즘도 전쟁을 일으키지'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화형이나 처형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전쟁을 그야말로 여차하면 전쟁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어서 '이 세상이 과연 합리적인 사고로 움직이는 곳인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도 좋은 곳인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해왔는가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해석하기도 두렵고 싫어서 나는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안심하고 살아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그냥 옮겨두기로 하겠습니다.***

 

민주주의자는 다수가 늘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고 믿을 필요가 없다. 그가 믿어야 하는 것은 다수결에 따른 결정이 현명하든 우매하든 간에 과반수가 다른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그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념이다. 또한 이 신념은 이른바 '생활인의 지혜' 같은 신비로운 개념이 아니라, 자의적 폭력에 의한 지배를 법에 의한 지배로 대체하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도구로서 믿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언제 어디서나 회선의 체제라고 믿을 필요도 없다. 의회제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자제력과 정치 경험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많이 있다. 이러한 나라의 민주주의자는 동포들이 적절한 정치 교육을 받았으면 하고 바랄 테지마, 한편으로는 거의 확실히 실패할 제도를 성급하게 강요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음을 인정할 것이다. (……) 민주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의도는 무력에 의한 정부를 전체의 합의에 의한 정부로 대체하는 것이지만, 그러려면 먼저 국민들이 특정한 종류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수가 거의 같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상대편의 목을 조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수가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편은 다른 편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수가 절반을 약간 넘는 편 또한 승리를 거둔 순간 양편 사이의 반목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겸양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러셀은 '인류에 해를 끼치는 관념들'이라는 그 글을 어떻게 끝맺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자연스레 생겨나는 악한 열정을 차츰 줄여 나가는 동시에 인류가 서로 돕게 하는 조직을 차츰 넓혀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한 가족이며, 한 식구의 불행 위에 다른 식구의 행복을 든든하게 세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즉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우리의 도덕적 결함이 분명한 사고를 방해하고, 또 우리의 흐릿한 사고가 도덕적 결함을 키우는 형국이다. 어쩌면, 나로서는 감히 바랄 수 없는 바이지만, 수소폭탄이 인류를 공포에 빠뜨려 건전한 정신과 관용을 찾게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수소폭탄의 발명자들에게 축복을 빌어줄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악한 열정을 차츰 줄여 나가기?

서로 돕게 하는 조직을 차츰 넓혀 나가기?

한 식구의 불행 위에 다른 식구의 행복을 든든하게 세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즉시 깨닫기?

수소폭탄이 인류를 공포에 빠뜨려 건전한 정신과 관용을 찾게 하기?

글쎄, 그중 한 가지라도 러셀이 살고 있던 그 시절보다 나아진 것이 있는지……

 

내가 이렇게 러셀의 그 생각을 짚어보는 것이 그를 비웃는 것 같았는지 이런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말하자면, 러셀이 저세상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입니다.

 

"대실망? 뭐 어째 급 실망? 주제넘게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와! 너 따위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주제 파악부터 하란 말이야!"

 

 

 

* 버트런드 러셀, 장성주 옮김,『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함께읽는책, 2013), 297.

** 299쪽.

*** 330~331쪽.

****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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