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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버트런드 러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Ⅱ

by 답설재 2015. 4. 9.

 

 

 

 

 

경험담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에 대하여 ‘까짓것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걸 왜 협조해주지 않을까? 의아해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런던통신』이라는 책을 읽고서부터입니다.

 

그가 그 두꺼운 책 중의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밝히기를,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논문을 쓸까 생각 중이며, 그 일곱 가지 부류 중, ▶ 계속되는 변명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지나친 근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스포츠 이야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는데, 딴에는 삶의 지혜의 한 가지로 변명을 일삼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걱정도 팔자"라거나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속담이나 우스개가 있듯이 이 세 가지 유형은, 아무래도 연구를 할 필요조차도 없는, 즉 따로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는 부류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영국 철학자)는 현학적인 태도로 지겹게 하는 사람의 완벽한 본보기이고(얼마나 현학적인 태도를 가졌기에……), ▶ 일화들을 들먹이며 지겹게 하는 사람은 보통 추억에 잠긴 나이 지긋한 신사들로서 그들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자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이런 일이 생각나는구먼." ▶ 또 여섯 번째의 허풍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본성을 지녔기에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는지에 따라 다시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흔한 부류는 '속물'이라고 했으며, ▶ 마지막이자 최악의 부류는 지나친 활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들로, 거의 예외 없이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러셀이 현학적이어서 사람을 지겹게 하는 유형으로 허버트 스펜서를 예시한 것처럼, 나도 "러셀의 이 정리는 정말로 그런 것 같다!"면서 이 일곱 가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예를 일일이 들어보고 싶지만, 만약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일곱 명의 원수를 만들거나 최소한 "좀 만나자!"는 전화를 받게 되거나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나도 자신을 최소한 저 일곱 가지 유형에는 속하지 않는 걸로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도 자기 자신을 저 일곱 가지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이나 그 유형들에 속하는 인물로 간주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최소한 이렇고 저런 인물이 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어느 글을 읽으며 '이 글을 쓴 필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닌가!' 싶은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말이 나왔으니까 좀 빙 돌려서라도 예를 들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들 후배('영원한' 후배)는 다 같은 교육부에서 근무하며 그 흔한 일화(逸話) 하나 만들지 못한 머저리들이란 듯 만날 때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무슨 무용담(武勇談)처럼 들려주는 선배가 있는데, 사실은 그 이야기들은 그분으로부터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어서 듣고 앉아 있는 시간이 난감하고, 따분하고, 혐오스러워서 속으로는 '이러니까 젊은 사람들은 이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 거지.'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는 '내가 늙었을 때 명심해야 할 일'이라며 다음의 열다섯 가지를 들었답니다.(조선일보, 2011.12.24,A20)

- 젊은 여성과 결혼하지 말 것

-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친구 삼으려하지 말 것

- 짜증내거나 시무룩해하거나 의심스러워하지 말 것

- 현재의 방식, 유머, 패션, 남자, 전쟁 등을 비난하지 말 것

- 아이들을 좋아하지 말며, 아이들이 내 곁에 절대로 오지 못하게 할 것

- 같은 사람한테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 것

- 탐욕 부리지 말 것

- 더러워지는 불안함 때문에 품위나 청결을 무시하지 말 것

- 젊은이들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고,

- 젊음에서 말미암은 어리석음과 약점을 참작할 것

- 품위와 청결을 소홀히 하지 말 것

- 조언이나 훈계를 남발하지 말 것

- 나의 조언을 청하는 사람 외에는 청하지도 않은 조언은 삼갈 것

- 많은 말을 삼갈 것, 특히 내 얘기

- 과거의 아름다움이나 건강을 자랑하지 말 것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예 '젊은 여성과 결혼하지 말 것' 같은 건 명심이고 뭐고 생각조차 할 필요도 없고, 그중에는 무슨 의미인지 더 파고들어야 할 항목도 눈에 띄지만, '같은 사람한테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 것'이나 '많은 말을 삼갈 것, 특히 내 얘기' 같은 건 정말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늙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하면 주변으로부터 철저한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 사람 왜 저래. 벌써 늙은이 흉내 내는 것 아니야?" (끝)

 

 

 

 

역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 나이인 모양입니다. 이 글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뭔가 자꾸 덧붙이고 싶어집니다.

회의를 한 다음에식당으로 몰려가면 흔히 분위기가 좀 어색해집니다. 회의 때 열정적으로 하던 얘기를 다시 꺼내기도 그렇고, 이질적인 멤버들끼리 이것저것 마음 편하게,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재간도 없고 하면 서로 눈치를 보게 되고 누가 좀 그럴 듯한 얘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사실은 간절히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누군가가 깨어줄 것이라는 기대, 그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사정에 대한 이해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럴 때 나서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꺼내는 것이 사실은 허접한 무용담, 추억담이 아닌가 싶고, 그건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모두들 들을 때는 관심이 있는 척해 주지만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헤어져서 뿔뿔이 돌아가며 씁쓸한 표정으로 토로하는 평가 대상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뻔한 일이겠지요.

"잘난 척하기는……."

"그러게 말이야. 늙으면 다 저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