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말도 없이 가버려서 흡사 이별 인사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침저녁으로는 싸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정리도 하지 않고 가버린 봄, 그렇지만 그 봄을 원망해 봤자 별 수도 없습니다.
아파트 정원의 새잎은 딱 하루만 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여겨보며 지나다녔습니다. 그건, 사람으로 치면 무정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디서 저 모습을 다시 보겠습니까?
목련도 그렇습니다. 말도 없이 피어서, 그 화려함을 널리 알리면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생기는지 금세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꽃잎들이 처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줄 이미 알았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 집 초인종을 울려서 "목련이 흐드러졌습니다. 지금 좀 내다보셔야 하겠습니다." 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빨리 저버릴 줄은 나도 몰랐습니다.
해마다 여러 번씩 오르내린 길인데, 저 나무가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걸 오늘 처음 봤습니다. 가버린 봄처럼―물론 내년 봄에도 지금 이대로 살아 있을 행운이 없는 건 아니지만―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거리가 되려고 새삼 저 나무, 저 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되었는가 싶어서 두렵습니다.
누가 언제 이 나무는 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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