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문장보기

by 답설재 2015. 5. 13.

 

 

 

 

 

문장보기

 

 

 

 

 

 

 

  책이나 신문을 보며 그 책이나 신문을 읽기보다는 펜을 들고 교정을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소한 적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걸핏하면 어느 부분을 블로그에 실을까, 살피며 그러고 있으니 '오십보백보'이긴 합니다.

 

 

 

 

  벤야민의 친구 숄렘은 벤야민이 당시의 작가들 중에서 프루스트 다음으로 카프카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

  이런 문장이라면, 다음 중 어느 것이 이 문장이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까?

  ① 카프카에게 가장 강한 친밀감을 느낀 사람은 프루스트였고, 그 다음은 벤야민이었다.

  ② 벤야민이 가장 강한 친밀감을 느낀 사람은 프루스트였고, 그 다음은 카프카였다.

 

  #2

  이런 문장은 어떻습니까?

 

  경주는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글쎄요. '경주는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이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문화재가 많다.' 혹은 '경주는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이었기 때문에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3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무구 정관 대다라니경은 현재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혹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재 남아 있는 세계? 현재 남아 있는 세계라니? 그럼 사라져버린 세계가 있다?'

 

  #4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한 번만 더 읽어보면, 당장 고치고 싶어질 문장도 보입니다.

 

  (…)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있지 않다….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가 더 나은 문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까? 글쎄요.

 

 

 

 

  더러 이 블로그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문장이 워낙 '거시기'해서 댓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괜히 썼다가 문장이 그게 뭐냐고 꾸중하실 것 같아서요. '학교 다닐 때처럼'요. ㅎㅎ"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사람은 내가 "마구 써도 괜찮아요." 한다고 해서 '아, 괜찮다니 다행이네.' 할 사람도 아니니까요. 아니, 그렇게 해서 댓글을 달아준다고 해서 나에게 무슨 덕이 될 것도 아니니까요. 실컷 오다가 어느날 돌아서서 영 딴 길로 가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붙잡아둔다고 해서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 이래 뵈어도 남의 문장 같은 것 신경 안 써요." 한다고 해서 "아, 신경 안 쓰는구나."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또 신경 쓰면 어떻고 쓰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퇴직을 한 다음, 신변잡기 몇 편 써본 경험으로 수필가로 등단한 친구들은, 스스로는 삶의 보람도 느끼고 그런 책 만드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에도 기여하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 문장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정말 문장가'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하다못해 그런 수필가도 아닌 사람의 사사로운 문장 가지고 괜히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뭐냐, 다만 돈 주고 사보는 책, 신문 같은 것의 문장은 자꾸 눈에 거슬린다는 거죠, 뭐. ㅎㅎ.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하신가요?  (0) 2015.05.21
늙은이 시계는 정말 더 빨리 가나?  (0) 2015.05.14
사라져 가는 것들  (0) 2015.05.08
처음 본 봄처럼…  (0) 2015.05.07
"선생님, 죽지 말아요!"  (0) 201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