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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선생님, 죽지 말아요!"

by 답설재 2015. 4. 12.

 

 

 

 

 

"선생님, 죽지 말아요!"

 

 

 

 

 

 

향기(香氣)와 향수(鄕愁) : 아이들이 커피 찌꺼기로 방향제를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철역으로 들어가다가 저 아이들 냄새가 풍겨서 곁으로 다가가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해안도시에서 지금 비행기(아니면 기차, 아니면 배, 배도 아니면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오십대의 중년 여성, 내 제자 J가 난데없이 전화를 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죽지 말아요!"

 

  전화가 걸려온 순간, 이번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명절도 아니고, 스승의 날, 그런 것도 아니어서……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더듬어 봐도 전화를 한 까닭이 영 짚이지 않고 감감하기만 했습니다.

  "죽긴 왜 죽어!"

  호기롭게 대답하면서도 '얘가 왜 이러지?' 싶기만 했습니다.

 

 

 

 

  "선생님! 그 시(詩), 눈물 나려고 하잖아요!"

  "응? 시?"

  그렇게 물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슨 시를 썼다고 이러지? 아니, 내가 요즘 시로 착각할 만한 글을 쓴 적이 있나?'

  "○○이가 전화를 해서 '미안한 전화'를 읽어보라고 했어요."

  "아, 그거?……"

  "제 이야기, 맞지요?"

  아, 이런…… 들통이 난 것입니다.

  맞는다고 할 수도 없고 시침을 뗄 수도 없고 어정쩡한 반응으로 얼버무리고 있었습니다. 난처한 순간이었습니다.

 

 

 

 

  J가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고맙고,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눈물겹다는 이야기, J는 공부를 잘 못해서, 6학년 한 해 동안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염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전화를 기다리며 지낸다는 이야기.

 

  그 J가 마침내 그 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J가 그 글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그걸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공부를 잘 못했다는 이야기, 한 해 동안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는 얘기를 써놓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얘, 이것 좀 읽어봐." 한다면 내 자신이 제정신일 리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J는 그 글이 시(詩)인 줄 압니다.

  나도 이런 걸 글이라고 쓰고 앉아 있지만, 사실은 이게 소설인지, 논문인지, 시인지, 평론인지, 그런 걸 구분하며 쓰지는 않습니다. 이런 얘기를 릴케나 미당이나 박재삼 같은 시인처럼 시로 나타낼 수 있다면야 좋기는 하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그런 시를 쓴다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 단 한 명, 그 J가 "선생님이 쓴 시"라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굳이 그걸 구분해 주어야 할 '교사'도 아니고, 더구나 저 J가 비행기(아니면 기차, 아니면 배, 배도 아니면 자동차)를 만들다 말고 돌연 오는 11월에 대입수능고사를 치르겠다고 나설 까닭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글이 시여도 좋고 시가 아니어도 전혀 문제가 될 리 없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수다스럽겠지만 사실은 나도 시를 좀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시를 쓰게 되면 나는 J에 관한 시도 한 편 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J가 아예 이 글을 '시'라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될 리도 없고, 그저 나는 그 J가 고마울 뿐입니다.  

 

 

 

 

  J는 몇 가지를 더 묻고 내 질문에 대답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했습니다. "안 아픈 거죠?"

  나는 끄떡없다고 했습니다.

 

  J는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너무너무 그리워요."

  "응, 나도 네 생각 많이 해."

  그리고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제발 죽지 말아요."

  "알았어! 너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을게."

 

 

 

 

  J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 줄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알았어!"

 

  나는 '교육'이란 그 신성한 것에 대하여 '최고' '1등'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앞세우는 현상에 대해, 그것이 아무리 절실하다 해도, 아니면 세계적인 현상이라 해도, 그걸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수긍해주기가 싫고 심지어 아주 넌더리가 나고 차라리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41년간 교사를 했나!"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다!" 그렇게 공격한다 해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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