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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처음 본 봄처럼…

by 답설재 2015. 5. 7.

 

 

 

봄이 말도 없이 가버려서 흡사 이별 인사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침저녁으로는 싸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정리도 하지 않고 가버린 봄, 그렇지만 그 봄을 원망해 봤자 별 수도 없습니다.

 

 

 

 

아파트 정원의 새잎은 딱 하루만 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여겨보며 지나다녔습니다. 그건, 사람으로 치면 무정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디서 저 모습을 다시 보겠습니까?

 

 

 

 

 

목련도 그렇습니다. 말도 없이 피어서, 그 화려함을 널리 알리면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생기는지 금세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꽃잎들이 처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줄 이미 알았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 집 초인종을 울려서 "목련이 흐드러졌습니다. 지금 좀 내다보셔야 하겠습니다." 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빨리 저버릴 줄은 나도 몰랐습니다.

 

 

 

 

 

해마다 여러 번씩 오르내린 길인데, 저 나무가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걸 오늘 처음 봤습니다. 가버린 봄처럼―물론 내년 봄에도 지금 이대로 살아 있을 행운이 없는 건 아니지만―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거리가 되려고 새삼 저 나무, 저 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되었는가 싶어서 두렵습니다.

 

 

 

 

 

누가 언제 이 나무는 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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