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 분이 "엄마 날"에 "파트타임 들어간다"고 써보낸 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냥 어머니 날로 두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걸…… 어머니들이라도 하루 대접 좀 받을 수 있을 텐데……'
구태여 '어버이 날'로 바꿀 때의 그 쑥스러움도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어머니 날만 정해 놓으면, 아버지들은 어떻게 하나? 남자들만 손해를 보라는 말이냐?"고 대어들었던 것일까요?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래, 이제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어버려 속이 시원합니까?" 하고 좀 따져보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습니다'.
Ⅱ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다 살펴봐도 카네이션을 단 노인은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그분은 나처럼 저승꽃이 많이 피었고, 거무티티한 얼굴에 세월이 오고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6·25 참전용사일까요? 훈장(약장)도 달고 있었는데, 그 카네이션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측은했습니다.
Ⅲ
전철 적자 경영의 주 요인은 고령화이고, 경영 개선으로는 역부족이므로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필 오늘 전철을 타고 오며 그 '호소'를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나 같은 사람까지 덩달아 노인이 되었으니…… 감당을 할 수가 없겠지요.
뒤에 선 젊은이가 내 어깨나 등에 손을 얹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한 명이 그렇게 하다가 내리니까 또 다른 젊은이가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은 괜찮았습니다. 마음이 편했습니다.
무언가 나에게 남은 게 있다면 다 주고 싶어졌습니다. 나에게 남은 게 뭔지 내가 모르겠으니까 젊은이들이 나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남은 게 있거든 다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Ⅳ
정말 미안합니다.
'우대용 교통카드(G-PASS)'를 쓰는 걸 보여주기 싫어서 계단을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 '부양료 소송' 해마다 급증
― 독거노인 137만 명… "어버이날 더 쓸쓸", 전체 노인의 20%
― '육아휴직 아빠' 48% 늘어
어느 신문 12면에 나란히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어쭙잖은 글을 보고 화가 나서 "그럼(그러니까), 죽어버려라!"고 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댓글 쓸 난을 두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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