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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늙은이 시계는 정말 더 빨리 가나?

by 답설재 2015. 5. 14.

 

 

50대에는 시속 50km, 60대에는 60km, 70대엔 70km로 간다고들 합니다. 세월 말입니다.

"별 쓸데없는……" 하고 일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걸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야, 이 사람아! 자넨 아직 멀었잖아."

그 말을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내게 그 말을 한 분은 벌써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는 아직 새치도 몇 개 없었을 때였습니다.

 

낮잠을 자면서 비몽사몽으로 '내가 지금 마흔아홉이지?' 하다가 쉰아홉, 또 십 년이 가서 예순아홉인 걸 알고 소스라쳐 놀라던 일도 이미 옛일이 되었습니다.

이러지 말고, 이쯤에서 나이를, 세월을 붙잡아야 한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그건 오십대, 좀 미루다가 육십대 때의 느낌이었고, 그만 포기하고 그 끈을 놓아버렸더니 일 년, 이 년, 삼 년이 '한꺼번에' '마음대로' 흘러가버려서 이젠 가족들도 대놓고 나를 노인 취급합니다.

 

 

 

 

세월이, 시간이, 정말로 빨리 가는가, 아니 과학적으로는 그럴 리가 없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느껴지는 건 사실인가 싶어 하다가 '별 쓸데없는……' '늙은이들의 주책일 뿐!' 했는데, 유명한 과학자 한 분이 나서서 "정말 그렇다!"고 한 걸 보고 씁쓸해졌습니다.

 

"착시 중 하나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얼마 전에 밝혀졌어요. 알고 보니까 어렸을 때 뇌의 신경세포 정보 전달 속도가 나이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어렸을 때는 세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축구 경기에서 1초에 30번 프레임을 찍으면 그냥 축구 경기지만, 1초에 3000번 찍으면 슬로 모션이 되죠. 그런 식으로 어렸을 때는 세상을 슬로 모션으로 사는 겁니다. / 몇 년 전에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었는데 왜 파리 잡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내용이었어요. 파리는 사람보다 훨씬 신경세포 정보 전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파리가 볼 때 사람 손은 슬로 모션으로 오는 거예요."

 

김대식 교수(KAIST 전기 전자과, 뇌과학자)가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그렇게 설명한 것입니다(조선일보, 2015.3.28. Weekly BIZ C4~5. 지식 콘서트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 “나이 먹는다는 건 자연이 내게 무관심해졌다는 것, 그리고 자유가 생겼다는 것… 삶의 의미를 정할 수 있는"). 김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이 신경세포들의 속도가 느려지는 걸 극복할 수 있는―노인들에게는 비할 데 없는 선물이 될―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커피를 마시는 것인데―'이렇게 쉬울 수가!'― 딱하게도 카페인의 효과는 5분간만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커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두 번째를 봐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집중(集中)'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집중을 하는 순간 훨씬 더 많은 정보 전달이 되고, (……) 착시 현상도 집중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24시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잖아요. 이것의 메시지는 뭐냐면, '아 그렇다면 내가 정말 선택을 잘해야 되겠구나'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상시적으로 집중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선택적으로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너스레를 떨면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동의한 적 없잖아요. 그냥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먼저 온 사람들이 규칙을 다 만들어 버렸어요. 세상의 규칙, 대한민국의 규칙. / 그러니 세상이 갑(甲)이고, 개인은 을(乙)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먼저 규칙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어쩌면 갑을 관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10년, 20년, 3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 미래의 내가 지금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기억할까요? 지금 현재와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상상 속 미래의 내가 지금을 기억했을 때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할 것 같다는 결정이 나면 거기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기억에 슬로 모션으로 입력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의 이야기는, 10년, 20년, 30년 후에 되돌아볼 현재에 대해, 현재의 일들에 대해 좀 더 충실하자, 뭐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그리고 현재의 일들이 소중하다, 현재의 일들에 집중하자는 이야기.

 

하기야 방법이 있겠습니까?

또 우리 노인들의 신체 기능이 젊은이들과 같아진다고 해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훌훌히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기능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 과학자가 연구해서 알려준 두 가지 방법만 해도 재미있고 고마운 일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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