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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건강하신가요?

by 답설재 2015. 5. 21.

교장선생님, 건강하신가요?
 
5월 되면서 교장선생님 생각을 내내 하다가
'스승의 날에 꼭 전화라도 드려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늦게 소식을 전합니다.
교장선생님을 닮고 싶어 쳐다보고, 내딛고, 그렇게 살면서도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으니… 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둘째아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교실 안 변화가 아직도 더디고 더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만
"흔들리지 말라"는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저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소용도 없는데 건강하긴 합니다. 염치 없는 일이 되어갑니다.

보내주신 글 읽고 생각이 나서 전에 이미 보여드린 내용을 다시 적습니다.1

 

 



 (…) 나는 그렇게 지내온 교직 생활에 회한이 많다.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내 직업이 좋고, 해 볼 만하며, 무엇보다 '나는 전문가(프로, 그러므로 죽을지도 모르고 뛰는 프로 축구 선수, 프로 권투 선수……)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어렵게 살아도 괜찮다.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전문가도 쓰러지면 끝장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동료는 "그렇게 애쓰다가 자칫하면 건강을 잃는다, 죽는다"고 경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전문가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서부 활극으로 치면 '총잡이', '살인 청부업자'와 같은 것 아닌가. 물론 전문성을 발휘하는 목적이야 다르지만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총잡이는 결국 주인공의 총에 맞는다. 그러나 그 총잡이는 "내 돈! 내 돈!" 하거나 "이제 나는 총을 맞아 죽으니 약속대로 돈을 받는다 해도 다 헛일"이라고, 하던 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이야 그 '총잡이'와 같은 전문가도 아니고 일생에 그런 고난을 한두 번밖에 겪지 않으니까 정말로 고통스럽거나 서글퍼지면 때로는 울기도 하지만, 전문가인 총잡이는 늘 그런 일을 하며,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한다. 그러다가 총 한번 맞은 걸 가지고 야단스레 울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주인공을 향해 총을 겨누고 쏘다가 죽는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 '프로'의 태도이고 표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서부활극의 총잡이가 총을 맞으면서도 바로 쓰러지지 않는데 대해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은 총에 맞는다고 바로 죽는 것이 아니며 쓰러지는 것도 신념에 따라 다르다는 다음과 같은 과학적 증거가 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고통에 둔감해지는 이유가 단지 총알의 효과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악의나 굳은 결의 때문일 수도 있다. 맥퍼슨은 말했다. "고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총알구멍이 아주 많이 나야 쓰러지죠. 로스앤젤레스 경찰서에 아는 형사가 하나 있는데, 그는 357매그넘으로 심장을 관통 당하고도 쓰러지기 전에 자기를 쏜 놈을 죽였지요."2

이와는 반대로, 총에 맞자마자 쓰러지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위의 책에는 그것에 대하여 「반면에 총격을 당했지만 맞지는 않았을 때, 혹은 맞아도 총알이 피부를 스쳐지나가 그냥 몹시 아프기만 할 때에도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그 증거도 제시하고 있다.3 그러므로 총에 맞았을 때 바로 쓰러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신념, 전문가다운 신념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다.

고인이 된 어느 교수는 늘 당신에 대한 호칭을 '선생님'으로 해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얼마나 좋으며, 그보다 더 존경을 담은 호칭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무얼 할까? 무얼 해보고 싶어하게 될까? 과학적으로 보면 다시 태어날 리 없고, 그러므로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므로 결정적으로 대답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역시 교사로 태어나고 싶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다만, 교수는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교사는 "교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않은 것이 해결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일본에서는 교사 혹은 선생이라는 직함의 끝에 '님' 자를 붙이지 않고 '선생'이라고만 불러도 그것이 이미 최고의 존칭이 되는데 비해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그 대상이 교사인지 아닌지 구분도 되지 않는, 때로는 그 선생님들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을 떳떳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현실은 꼭 개선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다.

매일 출근이 기다려지는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겠지요. 최고의 직업은 여러분이 들떠서 진심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 책을 찾아 읽고 좀더 배워 보고 싶은 일,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드는 일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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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저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에서.

2. 메리 로취, 권 루시안 옮김,『스티프,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파라북스, 2004), 155~156쪽.

3. 위의 책 155쪽.

4. J. R. 패리쉬, 손명희 옮김,『내 인생을 바꾼 선택』(시아출판사, 2004),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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