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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괜찮은 척하기

by 답설재 2015. 5. 27.

 

 

 

 

 

 

인형 '하나'가 밟혔습니다.

어둑어둑해서 몰랐고, 이게 뭔가 싶어서 내려다봐도 녀석은 무표정했습니다. 아픈 표시도 내지 않고 밟으려면 실컷 더 밟아보라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어두운데 왜 여기 혼자 있지?"

"굳이 물을 것 없지 않겠어? 괜히 뭘 묻고 그래?"

 

 

 

 

측백나무 화분 위에 앉혔습니다. 내가 데리고 들어갈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찾아가겠지…….'

 

"외로워 보이는데?"

"천만에! 웃기지 마! 난 괜찮아! 전혀!"

 

 

 

 

괜찮다고는 했지만, 이제 영영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거나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 다른 아이가 집어가거나 떡볶이를 담았던 일회용 컵, 과자봉지 같은 것들과 함께 아파트 청소 담당자의 쓰레기봉투에 들어간다면 곧 끝장일 것입니다.

주인을 찾지 못하면 다른 아이에게라도 맡겨지면 좋을 것입니다.

 

흔히 괜찮은 척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해봐야 별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기견' '유기인(遺棄人)'처럼…….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야 할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는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즐거운 척하면서' '마음속 혼란'을 감추는 것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공손하고 순종적인 사람에 비해 성격이 더 '괴팍했다.' 또 그런 사람이 병에 걸리면 병의 진행도 매우 빨랐다.

 

                                                                            ― 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우리는 왜 아플까 Why do people get ill?』

                                                                                 (배성민 옮김, 동녘사이언스 2011,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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