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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로토 이야기

by 답설재 2013. 9. 20.

 

 

 

 

 

로토 이야기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그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왕창 생기면 좋겠습니다. '왕창'? 그게 얼만가 하면, 로토 역대 최고 배당금이 95억원이었다는데, 그것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아내는 복권을 살 때마다 "이게 당첨만 되면 ○○에게 2억, ◇◇에게도 2억……" 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할 즈음, 한 점쟁이가 "단명(短命)인 남편의 명을 이어주려면……" 했다면서 뭐가 생기면 누구에게 줄 생각부터 하는 게 습성이 된 것 같은데 이젠 내게 그 돈을 쓸 데가 생긴 것입니다.

 

  문제는, 아직까지는 복권 당첨자 이야기 중에서 멋진 사례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뜯긴 이야기, 노름하고 술 마시고 외제차 사고 하다가 쫄딱 망한 이야기, 바람 피우고 부부간에 다툼이 생기고 그러다가 이혼하고 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 여기저기 뜯긴 이야기는 알 것 같습니다. 더러 어쭙잖은 글이 신문에 실리면 여지없이 연락이 옵니다. "좋은 글 잘 읽어봤습니다. 그런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니 헌금 좀 해주십시오."

 

  그런 걸 보면 거금(巨金)이 생기는 순간 내 생활이 헝클어지게 되고, 아내와 나 사이의 이 질서가 깨어질 수가 있고, 그러면서 내가 거지가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차라리 그 로토 당첨이 영원한 꿈으로 남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로토 당첨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그 거금(巨金)이 필요해서입니다. 대안학교를 세워보고 싶은 것입니다.

 

  '멀쩡한' 아이는, 학교 운영비를 다 부담한다 해도 절대로 입학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멀쩡한 아이들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걸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내치고 버리는 건 교육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멀쩡한 아이들을 입학시키면 멀쩡한 아이니까 대학입학시험에 척척 붙게 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라고 해서 일부러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도록 할 리도 없고, '대안학교답게' '정상적으로'(공교육의 눈으로 보면 '비정상적으로') 가르쳐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런 식의 공교육은 정말이지 싫습니다. 차리리 혐오합니다. '그걸 교육이라고?'

 

  아이들을 왜 학교밖으로 내보냅니까? 가르쳐 보고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학교밖으로 내보내는 게 그게 학교입니까? 그게 교육입니까?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그럼 그 아이는 누가 가르칩니까? 안 가르쳐도 좋다면, 그럼 학교는 뭐 하려고 있습니까? 왜 교육을 하면 인간이 된다고 이야기합니까?

 

  그렇게 학교도 포기한 아이, 부모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은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분고분한 아이들이야 누가 못 가르치겠습니까? 그걸 굳이 교육이라고 할 수나 있겠습니까? 이땅에 길을 잃고 헤매는 청소년이 28만 명이랍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겨우 이런 사람이니까 가진 돈이 없는 것이겠지요? 멀쩡한 학교들을 두고 대안학교라니……

  그렇지만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것에 한(恨)이 맺혔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슴아픈 아이들의 그 가슴, 그 상처를 만져주며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대안학교를 세우려면 이사장도 있어야 하고 교사들도 있어야 하고 시설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사장 시킬 만한 분은 있습니다. 우습지만 벌써부터 봐 놓았습니다. 그이라면 돈 떼어먹고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거금이 생기지 않는다면? 대안학교를 세울 수 없다면? 그렇다면 굳이 돈을 더 가져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몇 억쯤은 공짜라도 '사절'입니다!

 

 

 

 

 

 

  이 블로그의 세 번째 독후감은 에릭 시걸이 쓴 『남자,여자 그리고 아이』입니다.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쓴 소설입니다. 그 독후감 끝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 ☞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7210

 

  세상의 모든 가정은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아이는 모두 다르다.

  ‘특별한 환경의 아이’를 가정해야 한다면, ‘교육’은 그 아이에게도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은 모든 아이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막힌 사연’을 가진 아이라고 표현해야만 한다면, 그 아이는 ‘기막힌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일 뿐이다. 교사는 세상의 어떤 아이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아름다우므로 우리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아야 할 철저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당연히 이 세상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 얼마나 건방진 교사인가.

 

  “다른 문화를 연구하다보면 인간의 관습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관습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고유한 관습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의 관습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면 더 관대해지게 된다.”(앤서니 웨스턴, 이보경 옮김, 『논증의 기술』 2008, 33)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그래서 로토 당첨을 그리워한다는 나의 이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설명하고 싶어서 덧붙였습니다. 사실은 그 당첨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복권을 사지도 않고 있는데,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사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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