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영이란 분은 예전에 무슨 건설회사에 근무했다는데, 오래전부터 교과서나 문화재, 국어사전 등의 오류를 찾아 담당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행색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고 게다가 꾸미지도 않습니다. 머리는 산발한 것 같고 그 누르스름한 점퍼에 적당한 운동화, 언제나 그 차림에 한쪽 어깨에 사시사철 그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그 속에는 오류를 찾아 포스트잇을 붙인 책이나 자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정부 담당자들은 대체로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데 좋아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처럼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 그에게 당한 이후로는 만나도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을 두어 명 봤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대할 일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고치겠습니다" 하면 그는 아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나의 친분은 그렇게 이어져 교육부를 나온 지 까마득한 지금도 그는 나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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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가 특별한 요구나 요청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주겠다고 하면 마지못해 받아 마시고, 연대(年代)를 보고 육십갑자를 척척 알아맞히는 방법, 중국어의 우리말 표기 방법 같은 신기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해주고 돌아갑니다.
며칠 전에는 느닷없이 세종대왕 이야기를 꺼내더니 "대왕께서는 채 2만 일(日)도 사시지 못했지만……" 어떻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2만 일?'
나는 갑자기 혼란을 느꼈습니다. '겨우 2만 일이라니?' 돈도 2만원이면 얼마 되지 않고, 가령 줄넘기를 한다고 치고 하루에 1000번씩 열흘이면 당장 1만 번, 스무날이면 2만 번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 수 있는 기간을 날 수로 계산하면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얼른 세종대왕의 생몰 연대를 찾아 실제로 계산해 보기까지 하면서 그 날 수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왕의 생일과 제삿날까지 알고 있으니까 정확한 날 수를 대었는데, 나는 그걸 암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종대왕이 정확하게 며칠을 살다 가셨는지, 그것 자체가 내 관심사가 될 리 없는 것입니다.
별로 한 일도 없이 이미 세종대왕보다 오래 살았으면서도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이 살고 싶어 하면서 '그럼, 나는 도대체 며칠을 살다 가는 것일까?' 온통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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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생성된 때를 꼭 1년 전의 일로 비유하면, 이 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난 것은 1시간 30분 전의 일이랍니다. 아득한 옛날,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일도 겨우 15초 전의 일. 공룡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생겨났으니까 겨우 사흘을 살다 영영 사라져 간 셈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얘기를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내어 봤습니다.
어차피 곧 세종대왕처럼 저세상으로 가야할 나는, 내가 태어나고 죽는 시점(時點)을, 이 그림의 어디에 표시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따져보면 그것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1977년 9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어느 곳에 우리 인간과 유사한, 우리 인간과 어떤 방법으로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생물체가 있지 않을까 싶어 하며 쏘아 올린 우주탐사선 보이저 호가 2년 만인 1979년에 목성, 이어서 토성 주위에서 사진을 찍어 보냈고, 이제 지구를 떠난 지 36년 만에 태양계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36년 만에 겨우 태양계 탈피? 그러나! 아이들 말로 하면 '진짜 우주'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인공위성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발전기 동력으로 날아간다는데, 에너지는 2025년에 다 쓰게 되므로 아직 12년이 남았습니다.
보이저 호가 저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얼마나 멀리 날아간 것일까요? 앞으로 또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 것일까요? 그러면 우주 끝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나는 지금 이 우주의 어디에 있다가 가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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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주박 술잔 들어 서로 권하니 하루살이 짧은 인생 천지간에 부쳐 두고 끝없는 대해의 한 알 좁쌀인즉 내 삶이 한순간임을 슬퍼하고 장강 끝없이 흘러감을 부러워한다오 …………
문화일보(2013.9.27, 25면, 신세미 기자 북리뷰 왕수이자오『소동파평전』조규백 옮김, 돌베개)에서 보았습니다. 북송의 소동파(蘇東坡·1036~1101)가 당쟁으로 유배를 간 황저우(黃州)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읊은 '적벽부(赤壁賦)'의 일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