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전 편수국장 H에 대하여

by 답설재 2013. 9. 19.

예전에 교육부 편수관으로 들어갔을 때, 편수국 관리관(국장)은,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카리스마도 대단했고, 신념도 남달랐습니다. 한때 나에게도 편수관으로서의 신념과, 심지어 오만 같은 게 있었다면, 그런 분이 근무하는 곳의 공무원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 밑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건 공무원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잠시라도 함께 근무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정년 퇴임 즈음에 영국에 머무르면서 누드 사진 등에 온갖 이야기를 실어 친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더니 귀국해서는 <한밤의 사진편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 이상 누드 사진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어언 2000호에 이르는 편지를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음은, 그 축하 잔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그 기록에 대한 축사로 보내준 글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교육자로 근무한 경력이 41년이면 이골이 날만큼이지만, 이골은커녕……

그러지 말고 깨달은 것이나 경험한 것이라도 말해보라고 하면, 조직의 상사가 ‘또라이’인 경우가 많고(또라이에 대해서는 저 아래 참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호봉에 따라 받는 봉급이 적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할 일이 많아서 불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슨 아이디어를 내면 “좀 조용한 직장을 만들자”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양 어떻게든 깔아뭉개고 하던 대로 해서 ‘무사태평한 하루하루를 보내려는 상사’가 대부분이더라는 뜻입니다.

 

교육부는 ―학교와 달라야 하겠지요, 교육부니까― 좀 다르긴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아니요”는 거의 없고 그저 “예, 예”……

그 교육부에 들어갔을 때 ‘편수국장’이란 분이 없었다면 ‘여기도 대단한 곳은 아니구나.’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짧았지만 그분은 어떻게 딱 1초 만에 상황판단을 하고 ‘아, 이 사람이 제대로 하려고 저러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주제넘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좀 제대로 하려는 경우를 알아주는 상사가 있어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 함수곤 국장께서 “아니요!” 하더니 덜컥 ‘사표’라는 걸 냈을 때는 소설에서나 읽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나서 놀랍고 걱정스러워서 할 말을 잃었지만,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를 끝으로 드디어 정년퇴임을 할 무렵에는 영국 어느 대학을 근거지로 해서 유럽 일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어떻게 변신했는가 하면, 요즘말로 ‘지인(知人)’들에게 보내는 구경꺼리 이메일을 발전시켜 “한밤의 사진편지”를 발간하게 되었고, 그게 그분에게는 아무래도 좀 ‘평면적’인 일이었던지 주말에 모여 걷기 시작했고, 그걸 '대한민국 국토 U자 걷기'로 만들고 간부들을 선발하고 회원제를 운영하고 모이는 목표도 정립하고 부설 ‘하모니카합주단’을 운영하고…… 무수한 그 변화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들 회고해 보셨겠지만, 한 번도 정체된 적 없고, 한 번도 변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주말걷기 회원들이야 늘 서로 만나는 사이니까 그렇다 치고, 나처럼 그분의 어떤 면을 조금이라도 아는 체하는 경우에는 그분의 그 변신, 변화, 개선, 혁신, 창조, …… 하여간 사람은 모름지기 어떤 곳에서든지, 얼마든지, 새로움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그 정신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자신은 그걸 실천하지 못하고 남에게 이야기나 해주고 있으니 참 속이 쓰리긴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에게 알려주기라도 해야 하겠지요.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고, 누가 시키는 대로나 하면 답답하지 않나? 그것도 사는 건가?”

 

 

 

 

나도 사실은 “그러지 마시고 한밤의 사진편지를 더 발간하셔야 합니다!” 하고 몇 번 말씀드려 봤습니다. ‘이제 그만하겠다고 공언해도 사람들이 조르면 더 할 수밖에……’ 내심 그런 생각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이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그게 중단 사유가 될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끝없이 사랑하시는 사이인, 그분의 박현자 시인께서 쓰신 애틋한 글을 읽어보고는 ‘아,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사실은 무슨 못된 광선이 퍼져 나온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씩 들여다본다는 것이 어디…… 그걸 더 하시라고 조르는 것도 못할 짓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나는 장담하고 싶기까지 합니다. 그분은 또 무슨 일을 벌일 것입니다. 무슨 일?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그분 자신도 아직은 잘 모르는 어떤 일일 수도 있고 ―아마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어떤 무형의, 혹은 정신적인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 언제까지나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일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저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배움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일인지…… 또 있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롤 모델’이니 뭐니 하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잘 아는 분을 가리키며 “이것 봐! 이런 멋진 삶도 있잖아!” 할 수 있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다른 곳은 몰라도 교육계에는 유독 또라이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 또라이들은 자신이 또라이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또라이가 다른 또라이를 보고 '또라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워낙 또라이가 많으니까 또라이가 아닌 사람이 이상하게 보여서 그런 교육자를 보고 '또라이'라고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또라이가 교육감을 하면 자신을 닮은 사람, 혹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보다 돌아다니며 권력을 사는 일에 몰두하게 되니까 자주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혀 또라이들이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그런 일이 없어졌는지, 지금도 여전한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금씩'이라는 말을 하니까 생각나는 건 나는 '점진적'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 잘못된 일이라면 당장 바꾸어야지 뭘 '점진적으로' 바꾸나 싶은 것입니다. 에이, 또라이 같은......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어떻게 있다가 떠나는 것인가?  (0) 2013.09.29
로토 이야기  (0) 2013.09.20
2013년 秋夕  (0) 2013.09.18
재미있는 1인 1병 이상!  (0) 2013.09.09
아름다운 시인들  (0) 201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