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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2013년 秋夕

by 답설재 2013. 9. 18.

 

 

 

 

 

2013년 秋夕

 

 

 

 

 

 

 

 

 

  아내는 열흘쯤 전부터 제사, 차례 준비를 합니다. 가령 약주, 건어물, 식용유, 햅쌀, 한과 같은 건 미리 한가한 마음으로 사두어야 서두르지 않게 되고, 제값을 주고 살 수 있고, 양도 속지 않고, 무엇보다 정성들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세 군데의 시장을 둘러보고 몇 가지씩 구해 둡니다.

 

  구입해야 할 품목은 그 다음에 기록합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대형 매장에서 구입할 것, 재래시장에서 구입할 것, 임시에 동네 매장에서 구입할 것을 대충 구분하게 되고, 임시에 구입할 것은 사흘 전, 이틀 전, 하루 전으로 나누어 구입하고 준비합니다.

 

 

 

 

 

 

  교육부 근무를 마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시장가는 아내를 따라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냥 다녀온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나는 듣지도 않는데 아내는 매번 설명했습니다. 아내를 따라 시장이라는 곳을 가본 것은 학교로 나와서부터였습니다.

 

  그렇게 따라다니는 일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건 사사건건 실수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곧잘 "이것부터 사자, 저것부터 사자"고 했고, "그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았고, "그건 뭐 하려고 사느냐?"고 우겼고, "저것도 오늘 사두자"고 서둘렀고……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신통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보면, 내가 주장했던 물품은 질이 좋지 않았고, 양이 적절하지 않았고, 흔히 성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맛이 "아니옳시다"였고…… 더구나 차례를 다 지내고 난 다음, 아내가 "아버님은 평소에 이런 걸 좋아하셨다" "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이런 건 맛도 보시지 못하셨으니까 지금이라도 구경 좀 하셨으면……" "살아계시면 이렇게 요리해 달라고 하셨을 것"이라거나 하면 나는 그만 할 말이 없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몇 달 후, 제사나 차례가 돌아오면 나는 또 그 버릇이 발동해서 아내에게 들은 핀잔을 다 잊어버린 채 일일이 나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지요. 아들이 굳이 그걸 사드리고 싶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인들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럴 때 아내가 하는 말은 대체로 그런 투였습니다.

 

  나중에 또 그 식품의 품질이나 맛이 별로 좋지 않은 게 드러나서 내가 "그때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도리어 화를 내면 아내는 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식 준비하면서 말다툼을 하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시겠어요? 드시면서 마음인들 편하시겠어요? 40여 년 간 우리가 언제 이런 것 가지고 언짢아한 적 있었어요?"

 

  오래 전이지만, 한번은 내가 "술은 양주를 쓰면 안 되는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좀 망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싶으면 그러지요. 얘가 이젠 양주도 주는구나, 하시지 않겠어요? 우리가 범어동 살던 그 옛날, 동촌 가셔서 진열장에 양주가 있는 걸 보시고 돌아와 그게 그렇게 드시고 싶더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걸핏하면 무와 파를 쓸어 넣은 돼지고기 국에 소주, 막걸리나 드렸는데, 양주가 이렇게 흔해질 줄 누가 알기나 했겠어요?"

 

  그렇게 얘기는 했으면서도 왠지 조심스러워서 정말로 양주를 쓰진 않았지만, 어느 제자가 공자님께 개고기로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가 여쭈어보자, 한동안 그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신 공자님께서 "그래도 좋다!"고 하셨는데, 다른 제자가 의아해하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는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가난하지 않은가. 그가 준비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지 않은가."

 

 

 

 

 

 

  올 추석 차례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또 나섰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싶어서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동안 통째로 아내에게 맡겨 놓았던 세월이 길어서 그 미안함 때문에 공연한 간섭을 일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런 다툼은 차를 운전하며 가는 것부터, 시장을 보는 내내, 그리고 그 물건들을 넣은 박스를 옮기는 일, 그걸 풀어서 보관하는 일 등 온갖 일에서 벌어집니다. 둘이서 그렇게 하며 날을 보냅니다.

  다른 이들도 다 마찬가지입니까?

 

  사실은 다 지나가는 이야기(餘談)입니다. 둘이서 살면서 그런 일도 없으면 그럼 어떤 대화를 하며 지내겠습니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추석은 해마다 돌아오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는 추석은 앞으로 몇 번일지, 올 추석에는 그게 자꾸 생각납니다.

 

 

 

 

 

 

  풀벌레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실내에서는 이명(耳鳴)이 그 소리를 대신합니다.

 

  "나무와 태양, 봄, 가을, 타인들, 아이들, 개와 고양이 등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인생의 선물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언젠가 영원히 상실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친절함이나 선함이나 정직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렇게 썼습니다.1

 

 

 

 

 

 

  1. 프랑수아즈 사강, 『모든 사람은 부정하다』(유고집,2009), 샤를 단치, 임명주 옮김, 『왜 책을 읽는가』(이루, 2013), 234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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