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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水無痕, 無痕

by 답설재 2013. 10. 7.

 

 

 

 

 

水無痕, 無痕

 

 

 

 

 

  『현대문학』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한번은  강의 중에 중국 송대 야보도천이 『금강경오가해』에 남긴 두 줄의 선시를 놓고 검에 관한 열변을 토한 적도 있었다.

 

    竹影掃階 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한 점 일지 않고

    穿潭底 水無痕  달빛이 못 바닥을 뚫어도 물에는 자취가 남지 않네

 

  이 시를 이해시키기 위해 예로 든 것이 무공의 최고 경지 중 하나인 '심검心劍'이었다. 검을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신검합일을 뛰어넘어 기로써 검을 움직이는 이기어검 단계를 벗어나면, 검 없이 검을 펼치는 상태에 도달한다. 검이라는 매개가 필요 없기 때문에 심검을 무형검이라고도 하는데, 무형검이 내뿜는 기운은 형체나 중량이 없다. 따라서 상대방은 자신이 베인 줄도 모르고 한동안 움직이다가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베었음을 안다는 것이다.

 

                                        ── 해이수, 단편소설 「엔드 바 텐드」(『현대문학』 2012년 8월호, 148~149쪽)에서.

 

 

 

 

  "상대방은 자신이 베인 줄도 모르고 한동안 움직이다가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베었음을 안다."

  그런 표현에 감동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심검, 신검합일, 무형검, 이기어검, 그런 단어 때문도 아닙니다.

 

  塵不動,

  水無痕,

  '먼지 한 점 일지 않고',

  '물에는 자취가 남지 않네',

 

  이 단어들이 마음에 들어와  앉았습니다.

 

  水無痕

  水無痕

  …………

 

  그와 친구 사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침마다 그 '흔적 없음'과 만나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져 오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마침내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아도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無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