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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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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호텔, 옛 생각 병원에 갈 때는 올림픽도로를 타고, 병원에서 올 때는 강변북로를 탄다. 비교적 길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올 때의 강변북로는 고속도로와 거의 같다. 강변북로를 오갈 때는 꼭 한강호텔과 워커힐을 찾아본다. 워커힐은 유명했던 호텔이고 한강호텔은 예전에 고 강우철 교수, 김용만 편수관 등 여러 사람과 사회과 교과서 편찬을 위한 회의 장소로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병원에서 돌아올 때는 한강호텔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놓쳤나? 워커힐은 보였는데...' 기이한 느낌이 있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 이런! 그 호텔이 사라지고 그곳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평당 1억은 되는 아파트일까?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 호텔은 좀 한산한 편이어서 작업하기에는 최.. 2024. 1. 21.
꿈, 어쩔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사나흘 전에는 새로 배치된 학급의 아이들 앞에서 교사용 책상을 정리하는 꿈을 꾸었다. 내 경험 속 아이들은 당연히 긴장 상태였겠지, 화가들이 흑백으로 그린 '말없는 군중'처럼 혹은 무대 배경처럼 저쪽에서 내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책상 설합들을 일일이 열어보고 거꾸로 닫힌 것은 새로 닫으며 좀 불편한 느낌이었다. 어젯밤에 또 학교 꿈을 꾸었다. 어딘지 한동안 헤매면서 이제는 느낌으로 찾아다니지 말고, 대중교통 노선을 암기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어서 연수회장을 빠져나오는 장면, 뭔가 잊고 나온 게 있어 다시 들어갔다가 강의 중인 강사를 쳐다보고 나와서 각자 모종의 주장들을 내세우는 교사들과 함께 걷는 장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졌다. 우리 학년이 담당한 구역의 환경구성.. 2023. 12. 2.
부적은 열어보면 안 돼? 아이들 보라고 만들어낸 그림책을 사서 혼자 보고 있다. 온갖 도깨비들이 등장한다. 날쌔고 장난 잘 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는 그런 도깨비들을 좋아한다. 죽어서 가면 처음에 저승사자를 할래, 도깨비를 할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까 봐 고민이다. 어느 것을 하나... 고맙게도 부록으로 4종의 행운의 부적도 있다. 책 표지에 이미 저렇게 표시되어 있어도 그걸 펴보진 않았는데 어제저녁에 별생각 없이 열어봤고 그 순간 후회했다. '오늘 밤 좋은 꿈 꿀 운'은 맨 위에 있으니까 비닐봉지를 열지 않아도 다 보였고, 그 아래에 '용돈 운' '오늘 먹을 운' '게임!! 원 없이 하는 운'이 차례로 포개져 있었는데 용돈 운, 먹을 운, 게임 운이라니 내가 그런 걸... '이 속엔 또 어떤 행운이 숨어 기다리고.. 2023. 11. 2.
지나가버린 꿈의 나날들 나는 지금 자그마한 아파트에 삽니다. 처음엔 돌아눕기도 어렵겠다, 숨 쉴 곳도 없다 싶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더니 지금은 이만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 아파트에서 이렇게 작은 집들은 3개 동입니다. 어쩌다가 젊은 부부나 어린아이와 사는 집도 있지만 다 늙어서 부부가 등산이나 다니거나 뭘 하는지 둘이서 들어앉아 있는 집이 많습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잠깐이라도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늙어버린 부부가 타면 그들끼리나 서로 간에나 아무 말이 없고 무표정합니다. 주차장에 내려가보면 평일인데도 차가 별로 빠지지 않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 오는 집을 봐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들어갈 공간이 없어 버려져야 마땅한 서장,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큰 액자 같은 물건이.. 2023. 9. 3.
고달픈 인생길 '고달픈 인생길' 이렇게 써놓고 어이없게도 일단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삶이란 결국 거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는데 한번 모이고자 한다는 연락을 하면 늘 호의적이던 평소의 그분을 생각하니까 슬픔이 밀려왔다. 1월 22일 계묘년 설날 첫새벽에는 두 자루의 꿈을 꾸었다. 그믐날 저녁에는 '설날에라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어했는데 헛일이었다. 먼저 꾼 꿈은 절벽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애써서, 천신만고로 오르내리다가 '이건 꿈이라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며 깎아지른듯한 산마루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했을 때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한 것은 비록 아난다 등 제자들만은 아니어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 2023. 3. 3.
어머니의 영혼 꿈속에서 이미 저승으로 간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어머니도 대화는 나누었는데 손을 잡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표독스러운 여신 키르케를 잘 다루어 1년간 꿈결 같은 대접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안내로 저승세계를 찾아가게 되고 어머니도 만납니다. "오, 아들아, 어찌하여 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살아있는 몸이 아니냐. 그런데 트로이에서부터 여태껏 바다를 헤매고 돌아다녔단 말이냐? 이제까지 이타카에는 전혀 가지를 못한 것이냐." "어머님, 제가 귀국하기 위해 이렇듯 테이레시아스 망령에게 신탁을 받으러 왔습니다. 트로이를 떠난 후 겹친 재앙 때문에 이렇듯 .. 2021. 12. 15.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행 정말인지 몰라도 20년을 키우면 주먹만 하게 된다는 마리모 앞쪽으로 넓게 내려다보여서 비행기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의 왼쪽, 선생님은 오른쪽에서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다 지내놓고 보니까 우리는 서로 옆 교실에 있었습니다. 어떤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곳에 있었다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1년을 보낸 그곳은 정녕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지낸 교실들은 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을까요? 이제 나는 그곳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 대한 걱정이 깊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그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게.. 2020. 7. 2.
'설날' 혹은 '새해' 1 섣달그믐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여행단을 따라가다가 일행을 놓쳤는데 희한한 여성 집단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식사비 일체를 내가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기가 막혀하는데 그 집단의 대표인 듯한 여성이 식사를 시작하려다가 기꺼이 식사비를 내겠다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결코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그 수십 명이 모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 특히 섣달 그믐밤에는 좋은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평생 그런 기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새해 새벽에 좋은 꿈을 꾸면 일 년 내내 행복할 것이라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앞두거나 섣달그믐쯤이면 좋은 꿈을 꾸라는 덕담을 하는 .. 2020. 2. 1.
오십 년 전 # 1. 이우학교 방문 이우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단은 내일 아침 일찍 개별로 그 학교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시각에 도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걱정스러웠다.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하는 방법, 아예 오늘 오후에 그 학교 인근의 숙소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는 방법을 생각했고, 아무래도 오늘 출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우학교? 내가 교장이었을 때, 나는 내가 직접 가 본 적이 없는 이우학교에 우리 학교 교감과 부장교사 등 열세 명을 보내 관찰하고 오게 했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남아 있었는데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가 그 학교를 참관하는 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교장선생님꼐서 이 학교 교장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말하자면 내가 강조하는 것들을 그 학교에서 실제로 볼 수 .. 2019. 9. 28.
새해맞이 꿈 1 인터뷰를 마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연예인이 있다. 그쪽에서 나를 알 리가 없는데도 실없이 '인사를 하는군' 하고 그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12월 말부터 1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그런 인사는 잠시 주춤하다가 설날을 전후하여 또 이어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새해가 그렇게 오래 시작되는가 싶은데, 연예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래에는 새해 인사를 하는 연예인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새해가 그렇게 오랫동안 '시작'되어도 나는 정신을 좀 차리는 편이다. 아직도 음력이라니, 어쩌면 끈질긴 것일까? 새해맞이 꿈을 굳이 음력 섣달그믐 밤에 꾸는 것이다. 2 오랫동안 그 꿈은 대체로 어수선한 것들이었다. 버젓한(?) 노인은 아니더라도 노인은 노인이니까 풋풋한 꿈을 꿀 리가 없고 그런.. 2018. 2. 18.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1 여직원 두엇이 앉아 있는 강당 출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길을 안내하는 학생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은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생각도 없이) 관례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복도를 지나자 잘 차려입어서 더욱 아름다운 L위원장이 꽃다발과 무슨 두루마리 같은 걸 가지고 분주히 나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나오는 건 보나 마나이고 내가 알은체 했는데도 '저렇게 허접한 차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2 이동하라는 발령을 받고 나서 그동안 근무한 곳의 주변을 살펴보며 그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도 한 풍경에 감탄하며 나중에 정선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멋진 사진이 될 듯한 곳들을.. 2017. 12. 10.
흐트러진 시계 바늘 명패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이면 좋겠다. 다음은『現代文學』 7월호. 조해진 단편소설 「눈 속의 사람」 첫 대문이다. 30분 뒤에 출발하는 태백행 버스표 두 장을 사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데 이곳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막연히 여진을 기다렸던 7년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그때 내 시계엔 숫자와 눈금이 없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돌연!……. '아, 그래!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었지!' 손목시계의 바늘들이 모두 빠지고 흐트러져서 그것들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애쓰는 꿈. 대충 맞추었는가 싶어 하면 와르르 다시 무너지거나 제 시각을 가르치지 못하거나……. 아예 영 맞추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 그 꿈들을 잊고 지낸 것이다. 마음이 자꾸 흐트러지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지나간 .. 2016.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