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74 어떻게 하지? 박새? 곤줄박이?먹이 찾기가 어려웠겠지.눈을 쓸어낸 출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밤새 자꾸 생각났다.지금쯤 길 건너 산으로 갔을까? 영하 14도라지만 햇살은 따스하니까 눈이 녹을까? 2025. 2. 8. 또 눈... 눈이 거의 다 녹아서 일간 한번 가보자 했다가 또 연기했어.미안해. 눈 내리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으면 김수영 시인의 「눈」이 떠올라.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궁금하지 않냐고?그걸 말이라고 해? 너에게로 가서 본 모습들 조금만 보여줄게. 오늘은 한낮인데도 차갑지?며칠만 더 기다려 봐.입춘 지났잖아.이제 봄이야. 2025. 2. 7. 내 날개가 언제 다 찢겨 나갔지?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문득 '내 날개'가 떠올렸다. 내 날개?그런 게 있었나?있었지?그걸 어떻게 했지? 그리고 내 날개는 찢겨 나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나는 내가 그 날개를 가지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몰랐다. 모른 채 살아왔다.그 날개가 찢겨 나갔다는 걸 알아챈 순간,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날개가 있었다는 것도, 그 날개가 찢겨 나갔다는 것도.허전하고 서글펐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날개야 다시 돋아라.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한 번만.. 2025. 2. 5. "죽었어?" 나는 6시가 넘었는데도 자고 있을 때가 있다.그럴 때 아내는 문을 열며 묻는다. "죽었어?"어느 날 딱 한 번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긍정으로 유효할 날이 있게 되고 그럼 난 "응."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인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비극일 것이다.그날 아침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그 시각이 닥치기 전까지의 아침은 아주 잠깐씩일지라도 행복할 것이다.그리고 그 물음 "죽었어?"에 대한 내 대답은 행복한 것이면 더 좋을 것이다. ∙ "코에 손 좀 대 봐."∙ "당신이 좀 알아봐 줘."∙ "아직 안 죽었어."∙ "응, 죽었어."∙ "휴, 죽다 살았네."∙ "이런, 아쉽게도 살아 있네?" 그런 대답이라면 일단 괜찮을 것 같다.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얼른 대답한다. "아니~."그러지 말고 저 여섯 가지 혹은.. 2025. 2. 3. 재숙이네 채소밭 "쌤, 잘 계시나요?" 어제 오후에 재숙이가 전화를 했다. 정초 인사였다.재숙이는 짐작으로 60세? 61세? 딸 둘을 결혼시켜 손주들을 보았다. 막내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다.초등학교 6학년 다닐 땐 못 먹어서 그랬겠지? 호리호리하고 도무지 말수도 없고 빤히 내 표정만 살폈다. "재숙이구나!"연휴라서 남편과 함께 채소밭에 나왔단다."이 추운 날 채소밭에는 왜?""쌤, 여긴 겨울에도 농사지어요.""허, 그래?"재숙이네는 남해의 섬에 산다. 날씨와 겨울채소 가꾸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나는 재숙이의 설명을 들었다. "손주들은 재숙이 닮았겠지?""쌤, 저 닮으면 안 되죠! 공부도 제일 못했는데..."('그건 그랬지.')"넌 일 나가시는 엄마 대신 동생들 보느라고 공부를 할 시간이 도통 없었잖아." 그.. 2025. 1. 31. 설날을 앞둔 날 밤의 꿈 러시아에 대한 수업으로 정할까 싶었다.러시아?광활한 그 영토나 역사, 문화, 유명한 독재자, 소설, 음악, 옛 소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등 설명할 내용은 많지만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5분이나 10분쯤이면 끝장날 것이다.그나마 아이들이 경청할 리 없다. 그럼 어떻게 하나?차라리 아이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이다. 수업방법으로도 옳다. 요즘 세상에 아는 척하며 설명이나 하는 교사가 어디 가서 명함을 내겠나.아이들은 아는 것도 많지만 호기심, 관심, 의욕 등등 이야기의 촉매제가 다이너마이트 같을 뿐만 아니라 듣고 보고 읽은 것들이 그들 각자의 창고에 가득가득 쌓여 있다. 혹 입을 열지 않으면?그럼 외부의 촉매제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가령 러시아 지도! 러시아 지도는 귀하니까 아시아 지도! 아시아 지도에.. 2025. 1. 29. 내 지팡이는 지팡이가 아니다 나는 자주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그건 내 의지가 아니다. 아내 때문에 갖고 다닌다. 연전에 나는 어처구니없이 보도블록이 깔린 길바닥에 엎어졌었고 얼굴 일부를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고 그 상처 때문에 몰꼴이 말이 아니었었다. 아내는 놀라진 않았지만 곧 지팡이를 써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버렸다.그 결정을 듣는 순간, 이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싶었지만 길바닥에 엎어져 다친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그 사실은 무슨 대단한 일로서 방송이나 지역 언론에 발표되는 식으로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공개된 일이어서 아내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그 결정을 갈아엎고 되돌린다는 건 결국 나에게 무엇으로든 '손해'가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손해'라니, 무슨 손해?그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 2025. 1. 28. 기이하게 된 내 판단력 우리 초등 동기생 세 명은 A-4에 배정되어 있었다.뭐든 얘기해도 좋은 사이지만 주고받은 얘기들을 각자 자신의 아내에게 전하고 안 하는 건 알 수가 없다.C와 C' 둘 다 아내와 다른 방에서 잔다고 했다.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나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얘기를 전하지 않았다. 쓸데없기 때문이었다).나도 그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었다.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고 즐거워하거나 서글퍼하지 않았고 울거나 웃지도 않았다. 오늘도 C가 주로 얘기했고, 나는 적극적으로 들어주었고, C'는 관심 갖고 듣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데다가 C의 음성은 요즘 더욱 탁해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짐작으로 대충 듣지만 C'는 평생 한결같이 그렇게 들었다.. 2025. 1. 26. 바흐를 좋아하시나요? 어언 6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가을날 교정에서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를 읽어봤는지 물은 그 여학생을, 그로부터 50년쯤 후 남한산성 수어장대 올라가는 길에서 만났다.그 교정에서 그 여학생은 예뻤다. 짝을 찾는 일을 제쳐놓고 실속 없는 일에나 정신이 팔린 내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노트 복사물을 만들어 은밀하게 건네주기도 했다. 수어장대 올라가는 길은 호젓하진 않았다.그 옛날 우리 반 동기생들이 남한산성 아랫마을 한 식당에 많이 모였는데 그녀와 나 중 어느 쪽의 의도였을까,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던 그 길에서 어느 순간 그녀와 내가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다른 얘기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녀가 남편을 만난 얘기만 또렷하다.그 남편도 우리 반이었으므로 나하고.. 2025. 1. 19. 하나도 우습지 않은데 모두들 웃을 때 책을 읽을 땐 온갖 생각, 온갖 짓을 다 한다. 남은 책장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누가 읽으라고 하지도 않는 책을 들고 이 책을 언제 다 읽나 한숨을 쉴 때도 있고, 한 줄 한 줄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아껴가며 읽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숨 가쁘게 읽기도 한다. 김경욱이라는 작가가 쓴 "현대문학" 1월호의 단편소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숨가쁘게 읽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나, 한탄도 하고 이미 쓸데없는 일이 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생각 좀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반성도 하고,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도 있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가정교사인 화자가 제자로부터 배우는 장면 중 하나이다. "무슈는 꿈이 뭐예요?"하루는 강선재 군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비올라 양 아버님이 .. 2025. 1. 17. 영화 "알리타" 지금 알리타(사이보그)가 그녀의 남친 휴고(인간)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저 정도에 그치고 '12세 이상 관람 가'여서 뜻을 알 만한 웬만한 아이들은 다 봐도 될 것 같다. 알리타는 연약해 보여도 악의 무리를 여지없이 무찌르는 멋진 전사다.남친 말고도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그녀의 몸이 망가지면 복구해 주는 의사 이도 박사가 그녀와 함께 지낸다.저렇게 사랑을 나누고 돌아와서 묻는다. "인간이 사이보그를 사랑할 수도 있나요?"이도의 대답은 명쾌하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사랑하는구나." 이 영화는 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날을 26세기로 잡았다.그럼 대충 500년 후라는 얘긴데 5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AI(인공지능)라는 것이 지금 우리 주위를 얼씬거리는 걸 보면 불가능한 건 아무것.. 2025. 1. 11. 청둥오리에 대한 고양이의 생각 오른쪽 중간쯤의 냇물에 청둥오리 세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이쪽 풀숲으로 나와 있고 한 마리는 나오는 중이고 한 마리는 아직도 냇물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냇물의 이쪽 기슭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오면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의 상체를 볼 수 있고, 냇물 건너편 저쪽에는 이쪽 고양이의 아내인지, 아니지, 새끼 고양이겠지,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돌 위에 옹크리고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엄마가 저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잡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굳이 어느 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아서 그냥 지나오긴 했지만 고양이들이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고양이 가족이 '청둥오리 전골 파티'를 포기해서 오리 가족이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도 안전했겠지.. 2025. 1. 9. 이전 1 2 3 4 5 ··· 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