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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청둥오리에 대한 고양이의 생각

by 답설재 2025. 1. 9.

 

 

 

오른쪽 중간쯤의 냇물에 청둥오리 세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이쪽 풀숲으로 나와 있고 한 마리는 나오는 중이고 한 마리는 아직도 냇물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냇물의 이쪽 기슭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오면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의 상체를 볼 수 있고, 냇물 건너편 저쪽에는 이쪽 고양이의 아내인지, 아니지, 새끼 고양이겠지,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돌 위에 옹크리고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엄마가 저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잡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굳이 어느 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아서 그냥 지나오긴 했지만 고양이들이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고양이 가족이 '청둥오리 전골 파티'를 포기해서 오리 가족이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도 안전했겠지?'

 

이 글을 쓰기 전에 청둥오리가 분명한지 확인하려고 인터넷 검색창에 '청둥오리'라고 써넣었더니 '청둥오리 천연기념물'이라는 제목도 보였고(아니라는 사람도 많고), '청둥오리 전골'도 보였다. 다른 말도 여럿 보였다.

청둥오리 전골은 맛이 좋겠지.

그렇지만 전골을 먹어보겠다고 천연기념물인 야생의 청둥오리를 잡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천연기념물 아니라고 잡아먹는 건 더 우습고 한심한 녀석이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이 냇가를 따라 오르내리는 산책로에서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오르내리는 녀석을 두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필시 인터넷에서 나처럼 '청둥오리 전골'을 봤겠지.

나는 그 내용을 검색해보진 않았지만 그 녀석은 검색까지 해보고 '좋아! 그럼 한 마리 잡아야지!' 했겠지.

그 녀석을 두 번째 본 날은 내가 아주 작정을 하고 그 자리에 서서 노려봤더니 겸연쩍게 빙그레 웃으며 청둥오리를 맞히려고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날려 보내려고 던진다는 듯한 시늉을 했는데 생각 같아서는 "야, 이 양반아! 그 새를 왜 날려? 그냥 두고 보면 좋지 않아?" 하고 따지고 싶었는데 차마 그렇게까진 하지 못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만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이후로는 그 녀석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호시탐탐 오리를 노리는 장면을 본 것이다.

 

다윈 같아도 나처럼 지켜보기만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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