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리타(사이보그)가 그녀의 남친 휴고(인간)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저 정도에 그치고 '12세 이상 관람 가'여서 뜻을 알 만한 웬만한 아이들은 다 봐도 될 것 같다.
알리타는 연약해 보여도 악의 무리를 여지없이 무찌르는 멋진 전사다.
남친 말고도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그녀의 몸이 망가지면 복구해 주는 의사 이도 박사가 그녀와 함께 지낸다.
저렇게 사랑을 나누고 돌아와서 묻는다. "인간이 사이보그를 사랑할 수도 있나요?"
이도의 대답은 명쾌하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사랑하는구나."
이 영화는 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날을 26세기로 잡았다.
그럼 대충 500년 후라는 얘긴데 5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AI(인공지능)라는 것이 지금 우리 주위를 얼씬거리는 걸 보면 불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이미 그런 소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문학》3월호에는 《언더 더 독》(황모과)이라는 소설이 실렸는데 인간과 사이보그가 혼재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즘 그런 소설이 자주 눈에 띈다.
유발 하라리도 그런 세상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썼다.
"나노공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으로 구성된 생체공학적 면역계를 개발 중이다. 그 로봇들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막힌 혈관을 뚫고, 바이러스와 세균과 싸우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심지어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다.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부 죽지 않는 인류'?
그건 사이보그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죽지 않는 인류가 나타나는 시기는 겨우 25년이 남았다.
나는 여러모로 지긋지긋한 점이 있어서 세상을 아름답다 생각하면서 다만 연명치료는 거부한다고 써놓았지만, 어쨌든 나처럼 심혈관 질환이 있어 이렇게 추운 날 저녁 또 핏줄이 막히는 듯한 증상이 오면 아파트 앞 24시 편의점에 들러 모종의 잔잔한 가루 봉지를 사서 입에 넣고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면 간단히 뚫을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이보그도 종류가 있어서 기계로 태어나 살아가는 사이보그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아직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간들과 어우러져 함께 사는 세상이 저 영화 《알리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사이보그 알리타는 다분히 정서적인 여성 사이보그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이 '일단' 정서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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