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등 동기생 세 명은 A-4에 배정되어 있었다.
뭐든 얘기해도 좋은 사이지만 주고받은 얘기들을 각자 자신의 아내에게 전하고 안 하는 건 알 수가 없다.
C와 C' 둘 다 아내와 다른 방에서 잔다고 했다.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나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얘기를 전하지 않았다. 쓸데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고 즐거워하거나 서글퍼하지 않았고 울거나 웃지도 않았다.
오늘도 C가 주로 얘기했고, 나는 적극적으로 들어주었고, C'는 관심 갖고 듣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데다가 C의 음성은 요즘 더욱 탁해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짐작으로 대충 듣지만 C'는 평생 한결같이 그렇게 들었다. 그는 또 누구를 비판하거나 적극 호응하거나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누가 아무리 막돼먹은 짓을 한다 해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럴 수도 있지" 하면 그만이었다. 기이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C는 온갖 얘기를 다했다. 우리 동기생들을 죽은 사람과 죽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해 보려고도 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먼저 전화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본인은 부모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서 자식들이 전화해 주기를 바라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건 정말 그렇겠다고 해주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실천하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우리가 어릴 때 선생님들은 '출필고 반필면(出必告反必面)'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방학이 되면 아예 방학생활 계획서에 ( ) 안에 한자까지 써서 해석해 주며 강조했다.
그 산골짜기에서 갈 데가 어디 있다고(어디서든 큰 소리로 부르면 저쪽 끝까지 다 들리던 그곳...) 집 밖에 나가고 들어올 땐 반드시 부모님께 알리라고 했는지, 미로 같은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닐 도시 아이들 때문에 교육청에서 각 학교 선생님들께 그런 교육을 부탁했는지 몰라도 그건 우리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걸 실천해야만 하나?' 갈등을 느꼈고 결국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의 죄의식, 지금 생각하면 가능성이 1%도 되지 않는데도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위기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들은 더러 명심보감(明心寶鑑) 같은 책 이야기도 하면서 효자들은 아침저녁으로 꼭 부모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안부를 여쭈었고 잠자리도 정리해 드렸다고 했다.
그런 예절이 지금도 이어져야 하고 더러 이어지고 있다면, 내 동기 C처럼 부모가 먼저 전화하기 전에, 그 부모가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전화로 치면 이제 유럽 어느 나라나 남아메리카 어디에 사는 것과 한 아파트 다른 층에 사는 것이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해주는 자식은 효자일 것이다. '효자'란 말 이제 듣기도 싫다면 그럼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부모가 먼저 전화를 한다, 그건 좋은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현실적인지,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다. 전에는 잘도 하던 '취사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늙으면 누구나 실천적인 생활철학을 갖게 되고 그 철학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므로 오늘은 이 이야기가 옳은 것 같았는데 다음번에는 또 저 이야기가 옳은 것 같아서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쩌면 내 판단력이 기이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식이 애틋하지 않은, 아무리 자주 봐도 그립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것만은 나도 알 것 같다. 알고 있다.
P.S. 우리는 곧 또 만나기로 했다. C는 그래봤자 앞으로 열 번 더 만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위협적인 얘기도 했다. 나는 다음번에는 강남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C'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는 것으로 정하자고 했다. 내 아내가 그런 음식 먹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이런 때 먹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C와 C'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장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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