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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 지팡이는 지팡이가 아니다

by 답설재 2025. 1. 28.

 

 

 

나는 자주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다. 아내 때문에 갖고 다닌다.

 

연전에 나는 어처구니없이 보도블록이 깔린 길바닥에 엎어졌었고 얼굴 일부를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고 그 상처 때문에 몰꼴이 말이 아니었었다.

 

아내는 놀라진 않았지만 곧 지팡이를 써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그 결정을 듣는 순간, 이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싶었지만 길바닥에 엎어져 다친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그 사실은 무슨 대단한 일로서 방송이나 지역 언론에 발표되는 식으로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공개된 일이어서 아내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그 결정을 갈아엎고 되돌린다는 건 결국 나에게 무엇으로든 '손해'가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손해'라니, 무슨 손해?

그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 또 엎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고 그런 일이 또 벌어졌을 때의 아내의 결정은 이번보다 훨씬 강력한 어떤 것이 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고 그 결정에 대해 아예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해버렸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내가 지팡이를 어떻게 가지고 다니나?' 하는 것이었다. 모든 일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 절 입구의 각종 목재 제품 파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손잡이 부분은 무슨 앙증맞은 짐승의 머리를 닮았거나 지팡이 전체가 흉측한 뱀 한 마리 혹은 거대한 지렁이처럼 생긴, 이미 다 사라진 옛 도인들의 것, 잘해봤자 어린 시절 노인들이 들고 다니던 손때가 묻은 그 흉물, 그 희한하게 생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지만 그런 중에 다행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내는 백화점 스포츠 용품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가 저 그럴듯한 스틱을 하나 사주었고 그 선처는 나에게 어느 정도 안심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결국 지팡이가 아니라 스틱을 짚고 다니게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그렇다.

내 기억 속의 그 노인들은 '늙어빠져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지만, 아직 팔팔한 나는 몸이나 정신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좀 부실한 것을 '걱정하는(두고 볼 수가 없는)' 아내의 성화 때문에 그냥 형식적으로 스틱이나 짚고 다니게 된 것이다.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만 스틱을 짚고 다니는 조그마한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내 지팡이는 지팡이가 아니라 스틱이다.

이 점을 나 스스로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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