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죽었어?"

by 답설재 2025. 2. 3.

 

 

 

나는 6시가 넘었는데도 자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아내는 문을 열며 묻는다. "죽었어?"

어느 날 딱 한 번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긍정으로 유효할 날이 있게 되고 그럼 난 "응."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인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비극일 것이다.

그날 아침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그 시각이 닥치기 전까지의 아침은 아주 잠깐씩일지라도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 "죽었어?"에 대한 내 대답은 행복한 것이면 더 좋을 것이다.

 

"코에 손 좀 대 봐."

"당신이 좀 알아봐 줘."

"아직 안 죽었어."

"응, 죽었어."

"휴, 죽다 살았네."

"이런, 아쉽게도 살아 있네?"

 

그런 대답이라면 일단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얼른 대답한다. "아니~."

그러지 말고 저 여섯 가지 혹은 저 여섯 가지보다 더 좋은, 더 행복한 느낌을 주는 대답이라면 좋을 텐데 나는 그런 주제가 되지 못한다.

미흡하겠지만 저 여섯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암기해 두었다가 그런 날 아침에 대답해 주면 어떨까 싶긴 하다.

그렇게 하면 속은 엉망이어도 겉은 꽤 변모한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속임수를 쓰는 건 결코 손해 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시시한 변모도 불가능한 스타일이다.

 

왜 그런가?

매일 아침 "죽었어?" 하고 문을 열어보기 전에 나는 부스스 일어나 잠깐 스트레칭을 하고 겸연쩍게 혹은 염치도 없이 거실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아내가 "죽었어?" 하고 묻는 건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럴 때 나는 백발백중 내 본성대로 "아니~" 하고 대답하게 되고, 그런 즉시 '에이, 또 실패했군.'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스타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눈...  (2) 2025.02.07
내 날개가 언제 다 찢겨 나갔지?  (12) 2025.02.05
재숙이네 채소밭  (12) 2025.01.31
설날을 앞둔 날 밤의 꿈  (8) 2025.01.29
내 지팡이는 지팡이가 아니다  (10) 202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