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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8

인생이 노래 같은 이도 있겠지요 꿈처럼 아름답던 날 그날에 날 담아보네 언제나 내 맘속에 그림처럼 숨 쉬는 꽃잎의 향기 같아 언젠가 잊혀지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아련한 기억 속에 묻어둔 시처럼 자꾸만 흐려지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가만히 뒤돌아보니 우리가 걷던 그 길엔 꽃잎은 피고 지고 계절은 또 바뀌고 내 모습도 바뀌었네 되돌아갈 순 없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지금 난 행복하네 꿈꿔오던 향기가 내 앞에 춤을 추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Ye Lai Xiang Ye Lai Xiang Ye Lai Xiang 노래 '야래향(夜來香)'은 1942년에 처음 나.. 2023. 10. 9.
가을 밤하늘 저 오리온 자다 깨면 생각들이 떠오를까 봐 두렵다.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의식의 안으로 들어온다. 그제 밤에는 차라리 얼른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난여름까지 밤새 보안등을 켜놓던 개울 건넛집도 가을 들어서는 깜깜하다. 하늘. 이제 빛을 보여주는 건 저 하늘뿐이다. 오리온 대성운은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 중에서 가장 가깝고 넓다는데도 거기 가려면 1500광년이 걸린단다. 9조 5천억 km×1500=...... 얼마나 먼 곳일까. 머나먼 곳 저 별들이 정겹게 깜빡이고 있다.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좌절, 우리의 상심, 우리에게 전화하지 않은 사람을 향한 우리의 증오, 우리를 스쳐 지나간 기회에 대한 우리의 미련 같은 것들을 그런 우주의 이미지.. 2023. 10. 3.
TV 방송의 준말, 조어, 속어 익히기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는 말은 아니지만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식으로 소설을 쓰거나 시를 짓거나 시나리오를 쓰는 것처럼 전문적인 글 말고도 할 줄 모르는 건 많다. 가령 몇 페이지고 줄 줄 써놓은 글을 다 읽고도 이게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철학적인 글도 쓸 수 없고, 블로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그 퐁퐁 튀어 오르는 듯한 싱그러운 글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형편이 이러니 밖에 나가도 텔레비전 속의 저 사람들처럼 아무나 만나 대화하기도 사실은 불가능하지 싶다. 일전에는 어느 블로그에서 "친동생(친한 동생)"이라고 써놓은 걸 보고 놀라웠다. 그건 분명 친동생이 아니고 친한 동생인데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2023. 10. 2.
방송을 타고 흐르는 외래어 물결 내가 언제 노인이 되었나 싶은데 이것저것 한계를 느끼게 된다. 허구한 날들의 TV 시청조차 그렇다. '방송국 사람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흔하다. 감각적으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는 새로 나온 말들 때문이다. "텐션 올려!" 기운 내라는 걸까? 좀 들뜬 분위기를 조성하라? 열을 올려라? 글쎄... 장면 전환도 점점 더 빨라져 금세 금세 지나가버리니까 대충 들어도 되는 것일까? 이러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건 아닐까? "저 털딱충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외래어, 준말, 조어 같은 건 자제합시다." 사람들이 그렇게 할 리도 없다. '관계자'가 나서서 "이래서는 안 됩니다! 캠페인을 벌입시다!" 외칠 리도 없다. 걸크러시(girl crush)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성적인 감정은 아님... 2023. 9. 30.
그녀를 위한 눈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을 때는 좀 일러서 단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녀였고, 말이 없었고,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여서 한 번만 더 쳐다보고는 그만 봤습니다. 예사로운 장면이었다면 마음놓고 몇 번 더 살펴봤겠지요. 어머니는 많이 늙었고, 딸은 삼사십 대?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냉랭한 표정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서 나가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단 한 마디 대화도 없었습니다. 딸이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닥에 무거운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두 명의 여 종업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딸과 어머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구와 홀 사이에 파티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만에 일어나는 듯했습니다. "괜찮아요.. 2023. 9. 27.
돈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자히르」에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소설집《알레프》). 잠을 이루지 못해 뭔가에 홀린 듯이 거의 행복한 마음으로 나는 돈보다 더 물질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어떤 동전이든지(가령 20 센터보짜리 동전) 가능한 미래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은 추상적이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라고 되풀이했다. 그것은 외곽 지역에서의 어느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으며, 지도일 수도 있고, 체스일 수도 있으며, 커피일 수도 있고, 황금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에피테투스(Epictetus 55?~135?,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의 말일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한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 2023. 9. 24.
불안·초조감으로 시작되는 아침 "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이다(《뉴스의 시대》). 오래전에 읽었지만 나는 요즘도 아침부터 뉴스에 시달린다. 아내는 세상 돌아가는 건 대충이라도 알아야 한다면서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부터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뉴스를 청취하는데 나에게는 그걸 말릴 명분이 없다. 뉴스를 전하는 방송국 사람들은 대체로 언성을 높인다. 자동차 역주행 사고나 화재 같은 시시한 아니, 시시한 건 아니지? 일상적인? 아니지? 일상적이라니... 어쨌든 그런 뉴스를 전할 때는 더욱 흥분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정치 소식은 하루도 빠짐이 없다. 그것도 거의 전투 상황 같다. 아무리 훌륭하고 중요한 일들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송국 직원들이 고래.. 2023. 9. 21.
이 세상의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덥긴 하지만 처서가 지난 주말이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왔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2004년 9월, 십몇 년 간 세상에서 제일 번화한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내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을 때 그 9월은 가을이었다. 가을다웠다. 나뭇잎들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곳 가을은 조용하고 쓸쓸했다. 귀양이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니까 귀뚜라미가 울었다. 내가 멀리서 통근한다는 걸 엿들은 그 귀뚜라미가 설마 정시에 출근하겠나 싶었던지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귀뚜라미가 우네요?" 광화문 교육부 사무실에서 전쟁하듯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눈에 띄는 아무에게나 알려주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기사가 들어오더니.. 2023. 9. 17.
희망가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단순한 선율의 이 노래가 떠오를 때가 있다. '희망가'인데도 처량하고 구슬프다. 흥청망청 엄벙덤벙 살았다는데도 굳이 원망스럽지도 않다. 어쨌든 이게 왜 '희망가'인지 모르겠다. 희망을 가지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실망가'일 수는 없었겠지?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단순한 선율의 .. 2023. 9. 16.
다정함·부끄러움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나 때문에 나 혼자 다녀오는 대부분의 날들보다는 운전이나 뭐나 신경이 더 쓰이지만 덜 심심합니다. 진단을 위한 사전검사를 받고 뜰에 나가 앉아서 쉬었습니다. 아침 일찍 검사 받고 오후에 진료를 받아야 하므로 쉬는 것이 아니라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정원에 참새 몇 마리가 다녀가더니 이번에는 비둘기 한 쌍이 와서 쉬었습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저것들도 저러네?" 아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젊었을 때는 속으로 '에이, 비둘기 같은 사람!'이랄까봐 부끄러웠을 것인데 지금은 '에이, 비둘기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니겠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에이, 비둘기만도 못한..."일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러나저러.. 2023. 9. 12.
글읽기의 맛 시간이란 개성의 유일성唯一性의 외면적인 징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개성은 개성 그 자체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개성의 유일성은 그것이 독립된 존재로서 '다른 어떤 것이 출입해야 할 창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족적自足的인 내면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성립한다. 개성은 자기 활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기 구별적인 것으로 자기의 유일성唯一性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시간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마치 음악의 한 곡 안에서 어떤 순간에 어떤 음이 오는가 하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나의 개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나라고 하는 개성의 내면적인 의미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의 형식에 의해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 속에서 진정한 시간.. 2023. 9. 11.
그리운 메타세쿼이아, 그리운 계수나무 위쪽은 메타세쿼이아, 아래쪽은 계수나무입니다. 사이로 보도블록이 깔려 있는 길을 나 혼자서 '오솔길'이라고 부릅니다. 오래전 D시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그 학교 앞으로는 그 시가지에서 가장 넓은 대로가 지나가고 그 대로변 학교 담장 안쪽으로는 수십 그루 나무와 맥문동 등 갖가지 풀들로 이루어진 한적한 곳이 있었는데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그 나무 아래 길을 '사색의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반 놈들이 다툴 때마다 "둘이서 손 잡고 사색의 길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고 돌아와! 두 번 돌아야 할지 세 번 돌아야 할지는 너희가 돌면서 정해!" 했습니다. 그 산책로를 다녀온 그놈들은 그것으로 다 해결되었다는 듯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나중에 .. 2023.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