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야, 이놈들아!"

by 답설재 2023. 12. 1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달픈 삶이랄까, 그 이전이 보잘것없는 세월이었다면 이후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들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세월에 끌려다녔다.

 

그럭저럭 책은 좀 읽었다.

그건 국어를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굽이굽이에서 그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담임도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온갖 창피를 다 주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느니 이제 온 국민이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도 독서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느니...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에 힘쓰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마치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내 잘못인양 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놓은 채 그렇게 지껄여대는 바람에 우리 반 아이들은 결국 나를, 온 국민의 5대 의무 중 한 가지가 되어 마땅할 독서를 한가한 꽃놀이나 취미로 여기는 놈팡이, 쓸모없는 인간의 대표인양 바라보게 되었다.

 

그 작자가 한 시간 내내 그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독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거의 나 혼자 교과서가 아닌 책을 즐겨 읽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공교롭게도 또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선생님은 전혀 딴판이어서 지금 나는 그분을 만난 지 꼭 60년이 되었는데 그분의 목소리, 그분이 책을 읽어주던 정겨운 모습을 그때 그대로 듣고 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 어두운 시절에도 우리를 '패지' 않았다.

걸핏하면 두들겨 맞던 시절에 그 학교 선생님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그 사립 고등학교 류시완(柳時完) 교장 선생님께서는 성품이 고운 분이셨는데도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나 매우 두려워했고, 교장 선생님 눈밖에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언제 그걸 조사했는지 우리 교장 선생님은 서애 류성룡 선생 직계 후손이라고들 했다.

우리들 중 몇 놈이 섹시하고 예쁘고 노래할 때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듯한 그 음악 선생님의 종아리가 가늘다느니 가슴이 좀 보인다느니 해서 수업 중에 울면서 교실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우리 반에 들어오신 교장 선생님께서 한참 동안 칠칠치 못한 사람들이라는 훈시를 하셨는데 그 몇 놈들은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오후 내내 빌어서 겨우 마음을 돌렸고, 이후 우리 반 아이들은 한동안 말수가 적어졌고 시무룩한 상태였었다.

 

우리 선생님도 마음은 비단결이었는데 몇 놈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면 "야, 이놈들아!" 하고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하셨다.

내가 수업 중에 홍식(弘植)이와 숙직실에 들어가서 바둑을 두다가 걸렸을 때도 "야, 이놈들아, 나와! 교무실에 가 있어!' 했는데 수업이 없는 선생님 몇 분이 우리의 죄목을 확인하고 실실 혹은 헤죽헤죽 웃으며 "너희들, 죽었구나" 했지만,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오신 우리 선생님은,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돌아가!" 하시고는 그만이었다.

우리는 속시원히 두들겨 맞던지 해서 갚아야 할 그 빚을 갚지 못한 채 또 죄를 지을 수는 없어서 바둑은 그만두기로 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은 중앙통 어느 추어탕 집으로 나를 부르시더니 막걸리 한 주전자를 나눠 마시자고 하셨었다.

 

나는 그런 우리 선생님을 저버린 삶을 살았다.

선생님께서 시를 낭송하시던 모습, 선생님께서 소설이나 수필의 몇 대문을 읽어주시던 모습, 그 음성이 선연한데도 나는 선생님을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다.

"야, 이놈들아!"

그 인자한 목소리를, 내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던 40여 년 동안 본받아 실천하지도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자하셨던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가르친 나의 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야, 이놈들아!"

나와 우리들 중 몇 놈이 쓰레기장 너머에서 담배를 피우고 뱀을 구워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신 선생님은 그때도 그렇게 호통을 치시고 뭐라고 뭐라고 하셨었다.

내가 웬만큼만 정신이 있었어도 평생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이고, 그럼 내 인생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내리네  (0) 2023.12.16
영화 사부: 영춘권 마스터  (0) 2023.12.15
발광  (18) 2023.12.07
삶의 상수(常數), 소홀치 않은 장수세(長壽稅)  (0) 2023.12.06
해 뜨는 시간의 인사와 기도  (6)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