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 눈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2021. 9. 22.
이태준 《문장강화》
이태준 《문장강화》 필맥, 2010 1 1963년쯤, 늦어도 1965년에 읽었어야 할 책입니다. 우리에게 국어를 가르치신 박용기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었지만, 교육 체제가 그렇질 못했으니까―지금은? 글쎄요? 그걸 왜 나에게?―선생님인들 우리에게 이 책을 읽힐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정겨운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설명보다 예문(例文)의 양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일일이 사례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상, 정지용, 나도향, 김소월, 이광수, 김기림, 홍명화, 정인보, 민태원, 이희승, 김기진, 염상섭, 주요섭, 현진건, 박종화, 박태원, 이병기, 김동인, 이효석, 김진섭…… 모교(母校) 교문을 들어선 느낌을 주는 분들을 이런 순서로 늘어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다 적지도 못..
2017.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