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서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네요?"
정말 그럴까?
독서가 좋은 일일까?
독서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해준 그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고, 나는 하염없이 독서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게 마치 무장해제를 시켜주는 듯한 것이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너무 팍팍한 해석이겠지?
그럼 독서가 좋은 진짜 이유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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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어요. 그의 영혼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다면 바로 저 근처에 있을 겁니다. 지휘자가 보여요? 저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에요. 그가 베토벤을 해석할 거예요. 그가 바로 베토벤이죠."
"내 하느님에는 이름이 없어요. 베토벤도 내 하느님이 될 수 있죠."
『솔로이스트』라는 실화소설에서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도 음악만은 잊지 않고 살아가는 흑인 나다니엘이 한 말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음대를 다니다가 그만두었고 결국 노숙자로 전락했다. 전락?
그는 한 개의 현이 사라져 세 줄 뿐인 바이올린으로 베토벤을 연주하며 돌아다닌다.
그렇게 연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그에게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취미 활동? 취미로? 그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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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9월호에서 《프루스트를 읽다》라는 책에 대한 리뷰를 봤다(조용호 "프루스트는 자폐적 자기중심에 빠진 상류계급 병자--정명환 《프루스트를 읽다》").
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책으로는 읽은 적이 없다. 오래 전 몇 달간 『현대문학』에 연재되고 있을 때 '이게 왠 호사인가?' 싶어서 긴 문장들을 여러 번 옮겨쓰기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 연재가 중단되어 안타까워하던 게 전부였다.
그 책의 완역본을 펭귄클래식코리아라는 출판사에서 12권으로 출판했는데(나는 그 사실도 몰랐지...) 문학평론가 정명환 선생이 그걸 다 읽고 《프루스트를 읽다》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 열두 권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부터 읽는 것이 나을까, 한 권으로 된 《프루스트를 읽다》부터 읽는 것이 나을까, 일말의 갈등을 느끼며 그 리뷰를 읽었다.
음악에 관한 얘기도 나왔다.
그는 "읽는 도중에 가끔 책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면서 "한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감성과 지성, 관찰력과 상상력, 분석력과 구상력을 함께 갖출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한다. 특히 프루스트의 음악론에 대해서는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정 교수는 술을 좋아해서 "지나치게 마시고 여러 기행과 추태"를 부렸었지만 10년 전 위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나서는 끊고 말았는데, 청각만 유지된다면 죽음 직전까지도 향유할 수 있는 쾌락으로 음악을 꼽았다.
"마치 태초에, 아직은 지상에 그들(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있었을 때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향해서는 닫혀 있는 세계, 어떤 창조자의 논리에 따라서 구축된 이 세계에서는 영영 그 둘만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그 소나타였다." 세상천지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존재하는 것 같은 경지로 소나타를 묘사하는 프루스트의 문장들을 인용하고, 연주자는 '곡을 향해 열려 있는 창문'에 불과하다는 서술에 대해서도 무릎을 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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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웬만해서는 음악을 듣지 못한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음악을 듣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걸 늘 생각하고 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럼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할까?
《프루스트를 읽다》의 리뷰에서 음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정신분열증을 앓는 노숙자 나다니엘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듣는 사람의 '쾌락'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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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도 그렇지 않을까?
정명환 선생의 표현을 흉내낸다면 "시각만 유지된다면 죽음 직전까지도 향유할 수 있는 쾌락으로 독서를 꼽겠다."
그렇지만 내 눈은 엄청난 속도로 망가지고 있다.
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쾌락도 없다면 어떻게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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