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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책 읽기

by 답설재 2020. 11. 27.

 

 

 

1

 

나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에 꽂혀 지냈고 이젠 책이나 읽으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책은 어느 분야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읽어도 좋겠지만(그게 거의 당연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것저것 읽을 만하다 싶은 걸 종횡무진으로 읽어치워도(치우다니?) 세상의 책은 무궁무진하니까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 싶었습니다.

읽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두 분 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떠났고, 피붙이 중에는 그런 나를 가리켜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 열정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 어떤 일을 했더라도 뭔가 얼마쯤의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성과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서도 그럴 것 아닙니까?

 

 

2

 

그런데 나는 그 독서를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과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소설을 읽게 되면 기본적으로(필수적으로) 줄거리 파악에 노력했습니다.

거기에 그쳤으면 그래도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소설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그걸 파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그 작가에 정통한 학자, 그 작품을 번역한 이의 해설을 중시했습니다.

아, 정말......

소설을 그렇게 읽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학교 다닐 때 배운 대로 줄거리를 파악하고 작가의 이력과 특성을 파악하고 그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평가에 맞추어 읽는 데 주력했으니 아, 정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험 볼 때나 그렇게 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배운 대로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3

 

심지어 詩까지도 그렇게 읽었습니다.

느끼지 않고, 소설처럼, 좀 바꾸어 말하면 신문기사 읽듯 읽어서 시인이 뭐라고 했는지 파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아, 정말.......

"시험 볼 때나 그렇게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배운 대로 시를 읽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운 대로 읽었습니다.

소설과 시를 그렇게 읽었습니다.

 

교수들이 입에 달고 다니던 〈이 작가의 문체를 분석하시오〉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는 물론 기억하고 있다. 〈이 시는 아주 잘 쓴 시다. 이 모음의 경우 시 전체에서 네 번 나오거든〉 등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식의 해부는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제3자에게 애인의 매력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지겨운 일이다. 문학적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일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애인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배고픔의 자서전』에서 본 문장입니다(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169).

나도 지금은 이 정도의 생각쯤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그렇지만 나는 이제 몇 시간이나 더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운 대로 독서를 한 것이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단 한 시간이 남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되고 '내 마음대로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을 행운(혹은 多幸)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려고 합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하고 있으면 또 뭘 하겠습니까?

남은 세월마저 종을 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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