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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름다움 혹은 행복, 사랑, 생명 같은 단어들

by 답설재 2020. 12. 3.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소설 《달과 6펜스》(서머싯 몸)에서 본 말입니다(민음사, 2013, 191).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에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좀처럼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랄까, 마음에 두었던 오로지 그 한 명의 소녀만 아름다워서 다른 걸 보고, 가령 길가의 민들레에게조차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고, 행복이란 것도 그랬습니다.

행복, 어떻게 그 가득한, 벅찬, 난해한 말을 내 이 누추한 생에 갖다 대겠는가, 앞으론들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하면서 손님들이 찾아와 내가 어떤 인간인 줄도 모르고 자기네들 같은 줄 알고 "행복하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매우 당황했습니다.

댓글 달고 답글 다는 시간을 단축하고 싶은 나는 매번 뭐라고 대충 써놓고는, 나의 경우 죽기 전에 과연 그 행복이란 걸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도저히 답할 수 없는 문제로 번민을 거듭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습니다.

이제 매듭 지을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나의 행복은 더욱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나는 그 행복이란 것에 대해 조금도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표가 나지 않게,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버무려 답하고 늘 하던 다짐만 거듭합니다.

'절대로 이분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고백입니다.

그동안 내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치로써 이른바 오프라인을 요구하면 나는 깊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응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닫았습니다. 그 교류를 폐쇄해버렸습니다.

엉뚱한 사정을 만들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거나(그 기간은 상대방이 정하게 되죠. 어떤 이는 몇 년을 두고 연락을 하니까요) 그쪽도 기분 나쁠 게 분명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어쨌든 이 빈한한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아직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라는 것 때문에 죽살이를 치고 있습니다.

혹 누가 내려다보면 "불치병(혹은 기저질환)을 가진 저 인간은 엎친 데 덮쳐서 거의 갈 데까지 갔구나" 할지도 모르겠고 그 옆자리의 어느 분은 "목숨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으니까 조금 더 지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하루 감염자 수가 몇십 명이더니 백 명을 넘고 이백 명, 삼백 명, 어느새 오백 명을 넘고 있습니다.

마치 누가 조정을 하고 있기나 한 것처럼 "제발 저 수치 좀 줄어들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백 명은 끔찍하고 한두 명은 외면할 수 있나? 내가 지금 착각을 하는 건 아닌가? 그 오백 명 속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고, 한두 명 속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인가? 오랫동안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마침내 자신이 마치 수치를 다루는 사람인양 착각하게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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