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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리운 타히티 섬

by 답설재 2020. 12. 4.

DAUM 이미지 : 부분(2020.11.30. 저녁)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타히티에 가까이 갈 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공상 속의 황금 왕국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타히티의 자매섬인 할 무레아 섬은 마법 지팡이가 만들어낸 허깨비처럼, 장엄한 바위섬의 모습을 망망한 바다 위에 신비롭게 드러낸다. 들쭉날쭉한 윤곽이 태평양의 몬트서래트 섬과 흡사하다. 거기에서는 폴리네시아 기사(騎士)들이 기이한 의식을 올리며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신성한 비밀을 수호하고 있을 것만 같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멋진 봉우리들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섬의 아름다움은 그 베일을 벗는다. 하지만 배가 곁을 지날 때에도 섬은 아직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침범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다가가기 힘든 험준한 바위들로 자신을 엄중히 감싸고 있는 듯하다. 산호초 사이로 겨우 통로를 찾았다 싶으면 그것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다시 가없는 외로운 푸른 태평양만이 눈앞을 가득 채우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타히티는 높이 솟은 푸른 섬이다. 깊게 패인 짙은 초록색의 주름은 거기에 고요한 골짜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곳 침침한 유곡(幽谷)에 신비가 깃들여 있고, 골을 따라 서늘한 시냇물이 졸졸거리면서 혹은 찰랑거리면서 흘러내린다. 이들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태고의 삶이 아직까지 태곳적 그대로 영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라고 슬픔과 두려움이 없을까. 하지만 그 느낌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현재의 즐거움만이 더 뚜렷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사람들이 광대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릴 때, 광대의 눈에 어리는 슬픔이 그러하듯, 다들 한바탕 웃음을 나눌 때 외로움이 더 사무치는 광대는 그 때문에 더욱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재담에 신명을 돋운다. 타히티는 늘 미소 짓는 모습으로 정답기만 하다. 우아한 맵시로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마녀와 같다. 그리고 파페에테의 항구에 들어설 때만큼 푸근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때가 또 어디 있을까. 부두에 정박한 아담하고 말끔한 범선들. 하얗고 세련된 집들이 늘어서 있는 바닷가의 작은 타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타오르는 홍염화(紅炎花)는 정열의 외침인 양 제 빛깔을 마음껏 뽐낸다. 그들의 부끄러움 없는 격렬한 관능에 보는 이들은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뿐인가. 증기선이 닿을 때마다 부두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무리는 즐겁고 쾌활하기만 하다. 떠들썩하고 유쾌하고 몸짓 요란한 사람들이 구릿빛 얼굴의 물결을 이룬다. 여러분은 불타는 하늘의 푸르름을 배경으로 색채의 움직임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모든 것이 엄청난 북새통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짐의 하역이며, 세관 검사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여러분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다. 날은 뜨겁고 색채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소설 《달과 6펜스》에 묘사된 타히티입니다(민음사, 2013, 226~227).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관능...

- 아름답고, 즐겁고, 쾌활하여 마음 편한 곳...

어느 사진이 그곳을 잘 보여줍니까?

 

고갱은 타히티를 즐겨 그렸답니다.

어느 그림이 '그래 바로 그곳이야!' 할 수 있습니까?

 

가볼 수 없다 해도 괜찮은가요?

오래오래 그리워하는 곳...

 

 

 

 

고갱 '말이 있는 길, 타히티 풍경' 1899. 94×73㎝, 캔버스에 유화, 푸시킨국립박물관,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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