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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눈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쓰기

by 답설재 2020. 12. 15.

 

 

 

지난 일요일, 새벽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눈이 와?"

"오긴 뭐가 와?"

아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이런.....

 

일기예보는 분명했으므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전날 일찌감치 저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눈이 내리지 않는 건, 눈이 내릴 거라면서 얼른 나가자고 재촉한 내 촌스러운 입장을 난처하게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마침내(!) 눈이 내렸습니다. '보라고! 창밖 좀 내다보라고!'

나는 말없이, 소리없이 외쳤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했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퉁명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눈은 한꺼번에 내렸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더 더 더 풀렸습니다.

 

"서둘러 떠나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저도 서둘러 들어오기를 잘했습니다."

저곳으로 들어간 친구가 저곳으로부터 탈출해온 나에게 저 사진과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문정희 시인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로 시작해서 멋있게 노래했지만

청춘은 가고 가슴속의 청춘마저 가버린 우리는 '유치 찬란하게' 눈을 피해 서둘러 오고 간 걸 다행스러워했습니다.

코로나가 판을 치는 곳으로 나온 걸 다행스러워하다니,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