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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제인 구달《인간의 그늘에서》

by 답설재 2017. 1. 26.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의 침팬치 이야기

제인 구달 지음, 최재천·이상임 옮김, 아이언스북스, 2001

 

 

 

 

 

 

1

 

김정욱 교수에게 개에 관한 책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멜로디 Melodie』(미즈바야시 아키라),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Les Larmes D'Ulysse; 유리시즈의 눈물』(로제 그르니에),

늑대가 개의 조상이라니까 이 책도. 『철학자와 늑대 The Philosopher and the Wolf』(마크 롤랜즈).

 

이 책들의 감동적인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는 어떤지 물었고 "아직"이라고 했더니 이 책을 갖다 주었습니다.

 

 

2

 

책 소개가 무려 27쪽이나 되었습니다.

옮긴이 서문 '제인 구달에게 한 나의 약속'(최재천),

'개정판에 부쳐'(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하바드대학교 동물학 교수),

'서문'(데이비드 햄버그 David A. Hamburg; 스탠퍼드 의과대학 의학박사),

드디어― 제인 구달의 '감사의 글'.

이 글들을 읽으며 제인 구달이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쓴 책인가 싶었고, 어렵고 흥미도 없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읽지 않고 돌려줄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난처한 일이 될 것 같고 읽은 척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피에르 바야르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생각했습니다.

'단 한 마디라도 서평을 그럴 듯하게 하면 김 교수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줄 알겠지?'

 

 

3

 

시작 부분이라도 보기로 했습니다. '침팬지를 찾아서'

이어서 '이방인의 정착→침팬지의 봄→캠프 생활→비가 오면 비춤을 춘다→캠프를 찾아온 침팬지들→플로의 성생활→결혼 그리고 새로운 시작→플로의 가족→사회적 서열 다툼→점점 커 가는 연구센터→유아기→유년기→사춘기→어른들의 사회→비비와 포식행동→죽음→어미와 자식→인간의 그늘에서→인간의 비인간성→침팬지 가족 후기'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 같았습니다.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침팬지는 일정한 구역 안에서 무리를 이루어 함께 생활하며 유아기, 유년기, 사춘기를 거쳐 침팬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축복하는 의식을 하고, 비가 오면 〈비춤〉을 추기고 한다. 또한 서로를 간질이며 낄낄거리거나, 껴안고 뽀뽀하고 폴짝거리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감성적이며, 동시에 꽤 높은 지능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풀뿌리를 이용해 흰개미를 낚고 잎을 씹어 스펀지처럼 사용하기도 한다.(뒷표지에서 옮김)

 

 

4

 

침팬지 묘사가 걸핏하면 인간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어느 인간 이야기', 아예 그런 눈으로 읽어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날카로운 활촉이 그녀의 살을 꿰뚫자 플로는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비틀거렸다. 플로에게 매달려 있던 플린트는 공포에 떨며 울어댔고, 우는 플린트의 뺨 위로 엄마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천천히 떨어졌다. 플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손을 옆구리에 대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핏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플린트는 바위에 붙은 삿갓조개처럼 여전히 죽은 엄마의 몸에 매달려 있었고, 결국 그 둘은 소름끼치는 퍽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구릿빛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며 잔인하게 웃는 인간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오자, 플로는 마지막 신음을 내뱉곤 이내 조용해졌다. 울부짖고 덤벼들어 깨물기까지 하던 플린트도 축축하고 악취가 나는 자루 속으로 쳐넣어졌다.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인간의 검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389)

 

제인 구달의 꿈 이야기, 침팬지에 대한 그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플로는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그녀의 젖이 갑자기 말라 버린 듯했다. 마침내 위안의 존재를 상실해 버린 탓인지, 플린트는 5년 전 피피가 젖을 뗄 때 보였던 것과 똑같은 유치한 행동 단계를 거쳤다. 끊임없이 엄마에게 매달렸고, 엄마가 자기보다 몇 걸음이라도 앞서가면 끙끙댔다. 엄마가 형이나 누나의 털을 손질하려 하면 계속 자기 몸을 들이밀었고, 그래도 엄마가 자기에게로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울어 버렸다.(359~360)

 

아직 유아의 티를 벗지 못한 '플린트'의 행동입니다. '플린트'는 침팬지 이름입니다. '플로'도 침팬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인간 이야기 같았지만…….

 

 

5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이것저것 마음대로 골라 읽으며 지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자유'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만족하기도 하고, 더 많이 읽지 못해 안달이 나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더러 한 가지 일, 한 가지 책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생활을 동경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까 좀 주제넘은 걱정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한 가지 연구(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제인 구달이 부러웠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인생인데 구달처럼 살아보지 못한 자신이 딱하게 여겨졌습니다.

 

몇 주가 흐르자 나는 고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침팬지에게 매료되어 밤에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으며 전적으로 일에 몰두했다. 사실 내가 일년 이상 외로워 했다면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무생물들이 나에게 있어 의미를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봉우리에 있는 내 작은 오두막에 〈잘 잤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물을 떠오는 계곡에 〈안녕〉 하며 인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나무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손으로 울퉁불퉁한 껍질의 거친 촉감이나 어린 나무의 차가운 보드라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땅 속 뿌리에서 벌어지는 알 수 없는 일들과 그 안에서 고동치는 수액으로 나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침팬지들과 같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날아다니고 싶었고 나무 꼭대기에서 바람에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 수 있기를 갈망했다. 특히, 나는 비가 올 때 숲에 앉아서 물방울이 나뭇잎에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내 자신이 녹색과 갈색의 축축하고 어둑어둑한 황혼에 완전히 에워싸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105)

 

 

 

 

 

 

어제 저녁을 먹으며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피자, 스파게티 같은 걸 즐겨먹어서는 곤란하고 김 교수도 그걸 알지만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유학을 가서 처음 1년간은 햄버그만 먹었는데 그래도 질리지는 않았을 만큼 이런 음식을 좋아하고, 아래층에서 스시를 먹자고 하면 그걸 좋은 음식이라는 건 인정하면서도 서비스가 좋지 않다느니 어제도 먹었다느니 하며 온갖 핑계를 댑니다― "오늘만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자"고 합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목살 바베큐를 먹자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날은 이태리 음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도록 한 것이고, 그 목살은 침팬지 목살도 아닐 테니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