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문학』2016년 12월호에서 허희정*의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갯벌을 떠난 다음에도 자꾸 걸었어. 갯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너무 멀리 와버린 데다가, 갯벌이 어딘지도 알 수가 없었거든. 자꾸 걷다 보니, 짐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가드레일 너머로 그냥 통째로 던저버렸어. 그땐 정말로 신나는 기분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무거운 게 가벼워지진 않더군. 이상하게 여전히 온몸이 무거웠어. 어쩌면 진흙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방도가 없으니까 일단 걸었어. 걷다 보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지.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자꾸만, 자꾸만 물건들이 커지는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그냥 걸었지. (……)
작가가 들으면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삶이란, 내 삶이란 결국 이런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때로 이렇게 지금의 내 존재의 실체를 나 대신 꺼내어 보여주고 정리하고 요약해주는 글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그걸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며 가는 길……
............................................
* 허희정 1989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및 동대학원 재학 중. 2016년 『문학과사회』 등단.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인 구달《인간의 그늘에서》 (0) | 2017.01.26 |
---|---|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0) | 2017.01.17 |
줄리안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0) | 2017.01.08 |
E.T.A. 호프만 《호두까기 인형》 (0) | 2017.01.01 |
국립중앙박물관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0) | 2016.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