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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T.A. 호프만 《호두까기 인형》

by 답설재 2017. 1. 1.

E.T.A. 호프만 《호두까기 인형》

정지현 옮김, 규하 그림, 인디고 2014

 

 

 

 

 

 

 

 

1

 

'호두까기 인형'도 모른 채(아는 체하며) 가르쳤으니…… 그 아이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알고 보니 사탕, 장난감 얘기였습니다.

좀 재미없게 얘기하면, 물활론(物活論)? 애니미즘(animism)? 모든 물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유아들이라면 어느 아이나 이야기를 따라 저 환상의 나라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할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따라 아름다운 인형의 나라를 찾아간 이야기였습니다.

 

 

2

 

의사 슈탈바움 씨네 세 아이들 루이제, 프리츠, 마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름다운 선물들을 받습니다. 특히 고등법원 판사인 드로셀마이어 대부는 손재주가 좋아서 진기한 장난감들을 만들어 선물합니다.

마리는 오빠 프리츠가 고장을 내버린 호두까기 인형을 좋아하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 인형의 실체가 사실은 대부의 조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친애하는 드로셀마이어 씨, 당신은 움직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난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것도 잘 알 거예요.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게요. 당신 삼촌의 뛰어난 솜씨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내가 부탁할게요."

호두까기 인형은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마리는 장식장 유리문 사이로 부드러운 숨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겨우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희미하지만 마치 종소리처럼 감미로운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들렸다.(123)

 

마리의 도움으로 생쥐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와 함께 인형 나라 여행을 떠납니다.

 

"이건 오렌지 시냇물이랍니다. 향기가 정말 좋지요. 하지만 크기나 아름다움에서는 레모네이드 강을 따라가지는 못한답니다. 레모네이드 강은 아몬드 우유 호수로 흘러들어 가지요."(152)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숲, 생강 과자 마을, 사탕 마을, 장미 호수를 거쳐 인형 나라 수도의 사탕 과자 성에 이르렀습니다.

 

"아, 저기 좀 보세요, 드로셀마이어 씨! 저 아래에 피를리파트 공주가 있어요. 저를 보며 상냥하게 웃고 있어요. 저기 좀 보세요, 드로셀마이어 씨!"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슈탈바움 아가씨, 그건 피를리파트 공주가 아니라 바로 아가씨 자신이랍니다. 장밋빛 물결을 향해 그렇게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랍니다."

마리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꼭 감았다. 바로 그때 열두 명의 흑인들이 마리를 안아서 강가로 데려갔다.(162)

 

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이 뉘른베르크 인형 나라의 연금술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성의 병사들이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호두까기 인형을 도와준 마리가 그 성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마리는 인형 나라의 왕이 된 드로셀마이어를 남편으로 맞이합니다.

 

 

3

 

장난감 코너 앞을 지나면 일쑤 온몸으로 울부짖는 아이를 보게 됩니다. 어머니는 집에 이미 장난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아이의 옆에는 그걸 사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가 서 있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는 그 가능성 때문에 눈물과 발버둥질로 최선을 다해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떼를 쓰는 아이는 의사 슈탈바움 씨네 아이는 아닙니다. 더구나 고등법원 판사 드로셀마이어 대부가 찾아오는 집 아이가 아닌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장난감들을 따라 인형 나라로 가고 싶은 꿈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4

 

나는 그런 아이들이 얼른 인형 나라를 떠나는 것이 좋은지, 그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는 것이 좋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칠십이 넘은 나이에 호두까기네 인형 나라를 가보는 것이 옳은지, 터무니없으므로 집어치우는 것이 좋은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 동화를 읽은 건, 호두까기 인형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짓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