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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by 답설재 2016. 12. 18.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07

 

 

 

 

 

 

 

라일라가 물었다.

"엄마를 이곳에 데려온 적 있어요?"

"그럼, 여러 번 같이 왔지. 네 오빠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왔고 후에도 왔다. 네 엄마는 그때만 해도 모험심이 강하고 아주 생기발랄한 사람이었다. 네 엄마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발랄하고 행복했던 여자였다."

그는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웃는 모습도 근사했지. 라일라, 네 엄마와 결혼한 이유는 바로 그 웃는 모습 때문이었다. 정말이야. 웃는 모습이 사람을 꼼짝 못하게 했다. 저항할 수가 없었지."

바비에 대한 애정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후로 늘 그녀는 그를 그런 모습으로 기억했다. 팔꿈치를 바위에 받치고, 손으로 턱을 감싸고, 햇볕에 눈을 찡그리고, 바람에 머리를 살랑거리며 엄마에 대해 회상하던 모습으로 말이다.(202)

 

딸(라일라)에게, 지금은 지독한 사람이 되어버린 아내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장면입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간 여성의 삶을,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저 라일라를 중심으로 그린 소설입니다.

 

아프간 같은 나라에는, 모래처럼 서걱거리는 사람들이 모래바람만 불어 가는 황량한 벌판과 구릉을 서성거리며 마지못해 살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히잡을 쓰고 가는 여인을 보면 '여긴 왜 왔지?' 싶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신문을 읽고 TV를 보며 지냈습니다.

'세계평화'니 '인류공영'이니 하는 말들은, 괜히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교과서 같은 데서나 어쩔 수 없어서, 체면상, 위선적으로라도 해야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뻔했는지……

2008년에 읽고 '이걸 어떻게 하나…… 무슨 얘길 하나……' 하며 지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같은 달인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티는 두 명의 동급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기티의 집에서 불과 세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로켓탄의 유탄이 그들을 덮쳤다. 나중에 라일라는 기티의 어머니 닐라가 기티가 죽은 곳으로 달려가서, 비명을 지르며 앞치마에 딸의 살점을 주워 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의 오른발이 2주 후에 어떤 집의 옥상에서 발견되었다. 아직도 나일론 양말에 자주색 운동화가 신겨 있었다고 했다.

…(중략)…

라일라와 둘이서 수업시간에 은밀한 쪽지를 주고받던 기티였다. 손톱을 예쁘게 다듬고, 핀셋으로 턱에 난 털을 뽑던 기티였다. 그리고 골기퍼인 사비르와 결혼하려고 하던 기티였다. 그 기티가 죽은 것이었다. 죽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마침내 라일라는 친구를 위해 울기 시작했다. 오빠의 장례식 때는 흘릴 수 없었던 모든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242)

 

친구(기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보다 처참한 묘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라일라를 첩으로 두게 된 늙은이(라시드)가 라일라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네 남편이고, 네 명예만이 아니라 우리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내 의무란 사실이다. 그것이 남편이 져야 하는 짐이야. 내 몫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너는 말리카(여왕)이고 이 집은 너의 궁전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마리암에게 말하면 해줄 거야. 마리암, 그렇지 않아? 뭘 갖고 싶으면 내가 구해다주마. 나는 그런 남편이다. 그 대신, 내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다. 나 없이는 이 집을 나서면 안 된다. 그게 전부다. 간단하지 않으냐? 만약 내가 집에 없고 뭔가가 급히 필요하다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나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리암을 내보내라. 그러면 나가서 가져다줄 게다. 내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알 게다. 그러나 사람은 볼가와 벤츠를 똑같은 식으로 몰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않겠느냐? 또한 우리가 같이 외출을 할 때 너는 브르카를 입어야 한다. 물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도시에는 지금 음탕한 남자들이 너무 많다. 결혼한 여자들의 명예마저 더럽히려고 하는 사악한 마음을 가진 놈들이 많단 말이다. 그래, 이게 전부다.(300)

 

 

아프간이 아니라 해도, '남성이 아니라 해도', 삶이 이런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끔찍한 장면만 고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여성의 삶이 자칫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이런 장면이 눈에 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라일라가 저렇게 라시드의 첩이 되어 낳은 딸(아지자)을 고아원에 맡기고 온 이야기입니다.

 

마리암에게 기대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라일라의 귀에는 아지자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만의 두툼하고 못이 박힌 손이 아지자의 팔을 처음에는 부드럽게 잡았다가, 다시 더 힘을 줘 잡았다가, 나중에는 아지자를 그녀에게서 떨어지도록 더 세게 잡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만이 아지자를 잡고 급하게 모퉁이를 돌아갈 때, 아이가 발버둥을 치던 모습과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지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라일라 자신도 고개를 숙이고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울음을 참으며 통로를 뛰어갔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집에 가서 마리암에게 말했다.

"그 애 냄새가 나요."

그녀의 눈은 마리암의 어깨를 넘고, 뜰과 담을 넘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뱉은 침처럼 갈색을 띤 산으로 향했다.

"애가 잠을 자는 냄새가 나요. 저만 그런가요? 저만 그래요?"

마리암이 말했다.

"오, 라일라. 그러지 마. 그래야 무슨 소용이야? 무슨 소용이 있어?"(432)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욱 천해 빠진 '핫바지'였을 것입니다.

저녁놀이 짙어지는데 쓸데없이 이제야 배웁니다. 읽는 책마다 절실합니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졸다가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