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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윤재현 《오오, 인도여》

by 답설재 2016. 12. 15.

윤재현 《오오, 인도여》

書路 1994

 

 

 

 

 

 

하우라 기차역은 지옥이다. 피난민의 행렬처럼 하우라는 매일같이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로 법석인다.

 

난리다.

지옥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붐빌 까닭이 없다. 짐과 짐. 그 속에 갇힌 사람들.

뒤범벅이 된 질서. 그러나 오히려 편안하다. 차라기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미 내게 익숙해 있던 질서가 오히려 여기서는 거추장스럽다.(31~32)

 

 

인도에 가보고 싶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해외에 갈 기회가 있어도 웬만하면 다른 이에게 양보했다. 나중에 한가로울 때 개별적으로 인도에도 가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타지마할(Taj Mahal)을 보고 싶었다.

무갈 황제 샤자한은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 죽자 22년에 걸쳐 저승의 아내를 위한 궁전을 만들게 했다. 그 무덤이 완성되었을 때 황제는 그런 아름다움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석공들의 손가락을 다 잘라버렸다. 그러나 이 공사 때문에 국가 재정이 고갈되어 아들 아우랑제브가 샤자한을 아그라성에 유배하였는데, 그는 죽어가면서도 타지마할을 보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대가 혹 인도 땅에 오게 되거든 거지와 모기와 그리고 빈대와 먼지 나는 도시조차 사랑하라. 더구나 장거리 여행 시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알아듣지 못할 굉음에 가까운 힌두 음악과 까마귀의 질퍽한 울음소리와 이젠 그들의 빛나는 거짓말조차도 사랑하라. 그것에 익숙치 못하다면 인도는 단지 불쾌감과 더러움과 당혹감을 안겨줄 뿐이다.

 

그대여 자비를 베풀라. 가난한 거지의 불행한 손을 뿌리치지 말라. 쥐떼들에게도 먹이를 베풀라. 인도는 너무나 장대해서 그대가 처음 도착한 곳이 끝이고 떠났던 곳이 시작일 수가 있다. 그래서 인도에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공존한다.

겨울과 여름이 같이 어우러지고 높은 산과 허허 벌판과 삭막한 사막이 함께 존재한다.

가난한 자와 부자와 죽어가는 자와 태어나는 자와 거짓말쟁이와 사기꾼과 성자와 성녀가 함께 있는 것이다.

오, 아름다운 궁전. 너무 싼 물가.

그러나 조심하라. 자만심을 갖고 있으면 때때로 죽음의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과시하지 말라. 그대가 갖고 있는 귀금속이나 달러의 위력을, 때때로 날카로운 비수가 허리춤에 꽂힐지도 모른다.(292~293)

 

 

나는 이 부탁을 명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명심 따위는 아무래도 필요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