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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by 답설재 2016. 12. 10.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

 

 

 

 

 

 

 

 

 

2007년에 읽고 내내 곁에 두었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그의 경외심이 사무쳐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그 사무치는 그리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하며 지낸 시간이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알래스카에서 살았어. 사냥에 대해서 생각했지. 살기 위해 동물을 죽인다, 그건 납득할 수 있어. 하지만 즐기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31~32)

 

그는 늘 관용과 친절,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풍긴다. 짐과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41)

 

내가 감동한 것은 분명 이리 때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펼쳐진 공간 때문이었다. 그 배후에 있는, 지금까지 이리가 살아온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그래서 풍경은 이리나 곰 한 마리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56)

 

원주민들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고가 자연의 불합리한 순환주기에 대하여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라는 사유재산과 땅에 그어진 경계선은 그들의 유연한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이었다.(59)

 

고래 위에 올라가 묵묵히 작업을 진행하는 젊은 에스키모들에게 노인들이 종종 뭐라고 훈수를 둔다.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어떤 영역에선가 노인들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세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78)

 

아버지나 아들은 이제 가족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기둥이 아니게 되었다. 생활이 편해지는 한편에서 남정네들은 점차 자신감과 긍지를 잃어갔을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94)

 

모든 것이 작년과 똑같다.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정말로 반복되어간다.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하고는 무관하게……. 자연의 질서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지도 모른다.(103)

 

때때로 멀리 볼 것. 그것은 현실 속에서 유구한 것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박물관도 점차 마음에 들게 되었다. 그리운 니스 냄새도, 삐걱대는 소리도 없지만, 들소 한 마리가 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귀를 기울이면 3만 6천 년 전 어느 날의 바람소리가 들려온다.(120)

 

  알(에스키모)은 외모하고는 달리 전혀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인이었다. 인디언들이 대개 가지고 있는 백인에 대한 편견도 알에게는 없었다.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남을 쏘아보는 기색이 아니라 뭔가 만물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듯한 온기가 있었다.(144)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알래스카밖에 없었던 나의 청춘시절을 떠올린다.

누구나 과거의 자신을 만나게 되는 노래를 가지고 있다.(179)

 

이듬해 이른 봄, 남쪽에서 철새들이 날아오면 아직 먹을 것이 없어서, 작년부터 매달려 있다가 이미 발효가 되어버린 그 열매를 쪼아 먹는다. 새봄에 비틀비틀 갈지자걸음으로 걷는 새를 보게 되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인 듯하다.

"블루베리 따먹다가 곰하고 박치기 하지 않도록 조심해."

사람들은 이런 말도 한다.(180)

 

이 샤먼 아주머니는 종종 운수가 나빠진다는 말을 했다. 어떤 행동이 왜 안 되는지를 물으면 '운수가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의 운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변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 운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자연'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자연에 대하여 막연하고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183)

 

그들은 극지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암흑의 겨울을 보낸다. 그 일기에, 어느 날 밤 오로라가 나타나 하늘 가득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십중팔구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빛을 바라보았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을 이루게 하는 그 모든 것에 감사를 바치며.' 이 책의 첫 페이지는 그런 헌사로 장식되어 있다.(224)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손가락만한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웅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명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244)

 

미국인이 '맥킨리'라고 저희 대통령 이름을 갖다 붙인 산도, 본래 인디언들이 '데날리'라고 불렀던 곳이다. 인디언 말로 '태양이 사는 곳' 혹은 '위대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254)

 

강물 속에서 연어를 물고 있는 곰, 곰의 아가리에 물린 연어, 모두 표정이 있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다.(255)

 

 

"강물 속에서 연어를 물고 있는 곰, 곰의 아가리에 물린 연어, 모두 표정이 있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다.(225)"

그렇게 쓴 호시노 미치오도 연어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이력(履歷)을 보고 썼습니다.

 

 

호시노 미치오는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을 담아낸 야생사진가였습니다.

1973년(19세), 알래스카 쉬스마레프 마을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여름 한철을 보냈습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2년간 야생동물 사진가 다나카 고조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1978년 알래스카 대학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한 이후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야생동물, 주민들을 담은 사진 작업으로 《주간 아사히》 등 일본의 여러 잡지와 《National Geographic》 등 해외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1996년 7월 22일,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TBS TV 프로그램 취재작업을 시작, 8월 8일, 그 호숫가에서 자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그도 마침내 연어가 된 것입니다.

"강물 속에서 연어를 물고 있는 곰, 곰의 아가리에 물린 연어, 모두 표정이 있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다."

향년 43세…… 쑥스럽습니다.

 

이 책을 10년간이나 곁에 두고 '감상을 써야 하는데……' 숙제처럼 생각하고 지낼 만큼 사무친 느낌을 가진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개별적인 것은 밝히기도 그렇고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저 호시노 미치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특히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려보며 함께 생각한 것은, 호시노 미치오는 아무래도 병원이나 그 어디쯤에서 세상을 떠나게 될 우리보다는 자극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렇게 살다가 필연적으로 이 환경에서 혹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우리의 이러한 사정(事情)들을 생각하며 죽어간다는 점에서는 거의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