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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by 답설재 2016. 12. 4.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다산에듀, 2014

 

 

 

 

 

 

'어렴풋한 증거들로 확신을 가졌던 것에 대해 마침내 논리적으로 파헤쳐 그 안에서 밖으로 이야기해 버린 책'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해서 학점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서울대 출신이 겨우 그런 거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

 

수용적 사고력이란 상대방이 가르치는 내용을 아무런 의심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해하고 암기해 시험에서 정확하게 기억해 내는 능력이다. 그에 반해 비판적 사고력이란 주어진 내용을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뒤집어서도 생각해 보는 등, 상대방이 가르치는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능력이다. 또한 창의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보다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을 새로이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38)

 

'우리'의 서울대는 어떤 사고력을 가진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을까요?

서울대 이혜정 교수가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전체 1,111명의 응답자 중 대다수가 자신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에 비해 낮다고 응답하더랍니다.1

 

그렇다 하더라도 교수들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길러주면 그만이고 당연히 그게 좋은 교육이겠지요. 서울대다운 교육이겠지요.

 

 

2

 

"제가 예전에는 중요한 내용만 골라서 필기했거든요. 그러다가 시험에서 크게 당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다 써요. 교수님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신 것까지도 다." 법과대 장민수(49)

 

"수용적으로 쌓은 지식이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창의적인 게 나오잖아요. 운동을 한다고 치면 수용적 사고력은 근력 운동하고 기초 체력인 거예요. 히딩크 감독이 그런 걸 강조했거든요. …(중략)…"(68)

 

"히딩크 어쩌고" 한 건 교수가 한 말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라는……. 유감스럽게도 이것도 학생(경영대 진수)이 한 말입니다. 이런 학생은 죽을 때까지 수용적이지 않을까요? 언제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해보겠습니까? 그런 학생이나 교수는 아직 걸음마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어린애도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하는 경우를 보면 이번에는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고 하겠지요.2

음, 자신의 자녀가 어릴 때부터 비판적·창의적인 모습을 보이면? 아, 그럼 천재가 태어났다고 여기겠지요.

 

이 책에는 교수의 강의를 '죽어라' 하고 받아쓰는, 신문에 난 것처럼 교수의 농담까지 다 받아쓰고 녹음하고 정리하고 외우는 학생들이 좋은 학점을 따는 비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 배분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어떤 과목이 엄청나게 재미있고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과목에만 빠져 있으면 다른 과목들이 다 구멍이 나요……." 사회과학대 김은진(83)

 

● 교수와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시험에 쓰면 A+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의견을 포기한다.(123)

 

●표 한 사항은 서울대에서 A+을 받는 학생들의 수업전략 중 한 가지입니다.3

 

"저는 저학년 때는 대학 시험에 대해 약간 잘못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창의적인 답을 해야지 싶어서 제 의견을 독창적으로 썼다가 학점이 망가졌거든요. 그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처럼 암기를 주로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회과학대 권혁준(171)

 

 

3

 

놀라운, 엄청난 일 아닙니까?

살아오면서 저 사람은 서울대를 나왔다는데 어떻게 저렇게도 답답할까 싶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까?

대학에서 그런 '썩은' 공부를 하더라도 일단 사회에 나오면 다시 정상적인 정신을 갖게 됩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럼 학부에서, 석사·박사 과정에서 내내 그렇게 공부하면 어떻겠습니까? 적어도 10년 정도를 그렇게 공부했다면?

'설마……' 싶다면 교수들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 있는 동안 학내의 다양한 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여러 교수들과 교류했는데, 조금만 친해지면 내가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서울대가 두루두루 100점, 100점, 1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느냐, 아니면 50점, 50점, 2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교수들의 답은 예외 없이 동일했다.

"역사의 리더는 한 분야에서 탁월성을 보이는 사람들이에요. 두루두루 다 100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50점을 받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서만큼은 200점을 받는 사람이 진짜 인재인 거죠. 이런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하지만 답은 그렇게 하는 교수들도 자신의 수업에서는 모든 과제에서 100점, 100잠, 100점을 받는 학생에게 A+을 주고 있지 않은가. 200점짜리 능력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100점짜리 능력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오히려 50점을 받은 과목 때문에 학점 평균이 낮아져 버려 결국 진짜 인재가 단지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취급받게 된다.(160~161)

 

"수업 시간 중에 토론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진도 나가기만도 바쁜데……."

…(중략)…

"토론이든 자기만의 생각이든 일단 뭘 좀 알아야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학부생들은 아는 게 없으니 그게 되겠어요?"

"학부생 애들이 무슨 비판적 사고를 해요? 먼저 외워야 할 게 산더미인데."(218)

 

 

4

 

그럼,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면 어떤 학생이 되겠습니까?

이게 답입니다.

 

……. 서울대 최우등생들은 절대 수업에 빠지거나 늦지 않고, 교수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필기하고, 교실에서는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최대한 집중하고, 과제와 시험을 미리미리 준비하며 여러 번 수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이고, 팀프로젝트도 혼자 주도하여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고, 평소 체력관리와 시간관리, 감정관리에도 신경 썼다. 이러한 특징은 …(중략)… 대학과 초·중·고를 막론하여 어느 학교에서든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특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학습 전략, 생활태도, 자세 등을 소개하는 다양한 TV 프로그램, 신문기사, 책에 나오는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215~216)

 

지금 그런 교육을 하고 있다면 '한국의 인재상'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학교 교육목표' 같은 선문답 말고 실제적으로는 어떤 능력을 가져야 성공적인 인재입니까?

 

말로는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철저한 절제와 자기 조절을 통해 주어진 지식을 잘 암기하는, 그것도 많은 분량을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완벽하게 흡수하는 사람을 인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즉, 우리는 주어진 내용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정확히 흡수하도록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고 잘 견디는 능력을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인재가 가장 갖추어야 하는 능력으로 기르고 있는 것이다.(242)

 

 

5

 

특별할 것도 없는 책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교육학과 교수들과 대학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대화를 하면서 논리가 부족해서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아닌가?'

 

'수용적 사고력이 높은 학생들은 횡재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또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 높은 학생들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들은 희생자가 아닌가!'

 

'그렇게 하면서도 만약 "지금부터 교수들의 강의를,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신장을 위한 관점으로 평가하겠다고 하면 모두들 자신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내세우겠지?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신장 면에서는 세계 제일인 것처럼 되겠지?'

 

'일방적·획일적 주입식 강의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위한 토론에 비해 그 얼마나 쉬운 방법인가! 얼마나 권위적이고 혹독한 방법인가! "잘 들어라!" 하고 무조건 설명하면 그만이니까. 끝까지 지껄여대고 "질문 없나?" 물으면 그만이니까. 질문 같은 건 하고 싶어도 못할 테니까. 교수들은 똑똑한 학생들을 속이고 있는 것 아닌가!'

 

 

6

 

교사들도 교사들이지만 우선 교수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엉뚱하게 학생들이 보고 '아하! 학점을 잘 받는 애들은 이런 작전을 구사하고 있구나!' 해버리면 그건 불상사일 것입니다.

 

Part Ⅰ그들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1부 서울대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2부 미국 대학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3부 무엇이 한국의 대학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Part Ⅱ 대학의 공부, 어디로 가야 하는가

4부 패러다임의 차원

  • '결과'가 아닌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 '지식소비자'가 아닌 '지식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으로
  • '문제해결력'에서 '문제발견력'으로6부 가르치는 방식의 차원
  • 5부 대학정책의 차원
  • 어느 하버드대 교수의 고백
  • '질문이 없는 교육'에서 '질문을 발굴하는 교육'으로
  • 닥터 하우스가 보여주는 '말하기 교육'
  •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7

 

이 글 보고 이 책 읽을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혹이나 싶었습니다.

두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우선 똑똑한 교수는 이미 읽었을 책 같고, 문제는 덜 똑똑한 교수의 경우인데 그런 교수는 고집불통이지 않습니까?

"난 안 읽어도 무슨 소린지 다 알아! 감히 어디서!"

 

다음으로 이 책 31쪽에 적혀 있는 경구입니다.

"교육이란 당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잊고 남은 그 무엇이다. _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봐! 아인슈타인도 그랬잖아. 그렇다면 우리 교육만 그런 건 아니라는 의미잖아."

그런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글쎄요, 그런 나라들 다 변하지 않았습니까?

 

 

8

 

이미 만날 사람 거의 다 만난 것 같긴 하지만, 지금 그들을 새로 만난다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교수가 강의하는 걸 꼼꼼하게 기록하고 녹음하고 정리하고 외우는 공부를 한 사람을 신뢰하고 존경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한 책"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여전히 잘 있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잘 있는 서울대에 대해 전혀 유감 없이 오늘도 그대로 잘 돌아가고 있으며, 어쨌든 앞으로도 서울대 출신을 중시하고 존경하며 그렇게 굴러갈 것이 분명한 사실은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어서 이런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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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39쪽.
2. 말하자면 씨가 따로 있다고 하겠지요. ㅎ~
3. ● 수업 시간에 교수가 강의하는 모든 내용을 필기한다. ● 시험에 대비하여 수업에서 필기한 노트를 나만의 방법으로 다시 정리한다. ●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을 최대한 완전히 소화하려고 한다. ● 재미없는 수업에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다. ● 수업 시간에 절대 졸지 않는다. ● 수업 시간에 항상 앞자리에 앉는다. ● 교수와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시험에 쓰면 A+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의견을 포기한다. 이 책에는 A+을 받기 위한 동기조절, 과제관리, 시간관리 요령도 나와 있습니다.(121~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