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줄리안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by 답설재 2017. 1. 8.

줄리안 반스 Julian Barnes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NOTHING TO BE FRIGHTENED OF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016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입니다. 그는 노년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1, 자살과 기억을 소재로 한 소설2, 아내와의 사별과 그 슬픔을 이야기한 에세이3 등을 썼답니다.

 

가족과 친구, 지인들, 작가나 음악가 등 유명인사들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자유롭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끝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죽음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이야기했습니다. 신에 대한 비아냥, 두려움과 공포, 노년과 죽음의 의미, 내려놓기, 죽음의 순간, 죽음 직전의 모습과 주검의 모습, 불행한 죽음, 죽음의 인식, 태도, 묘지, 옛날과 오늘날의 죽음, 회한, 마지막에 대한 계획, 죽어가며 들을 음악과 장례 음악, 병치레, 노년기의 부부, 배우자의 죽음, 식자우환, 죽음의 방식, 유언, 냉동인간, 유골과 묘지, 전통적인 장례와 병원에서의 죽음, 묘비명, 불멸에 관한 의식, 인간 종(種)의 미래, 죽은 자에 대한 기억과 추억, 망각……

 

이 열거는 분명히 유치한 정리입니다. 잘 열거하려면 다시 정신차려 읽어야 하겠는데, 그렇게까지는 싫어서 아예 제대로 열거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버리고 말겠습니다.

 

작가는 철학자인 형과 친구(쥘 르나르), 서머싯 몸, 조부모와 부모를 단골로 등장시키지만 신도 그런 주제입니다.

 

(……) 분별 있는 신이 우리 인생에 관련한 서류 일체를 보고서 나타낼 반응을 잠깐만 생각해보라. 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얘야. 내 서류를 쭉 읽어보았고, 또 너의 참으로 기품 넘치는 종교 대변인의 탄원도 잘 들었다. 확실히 넌 최선을 다해 살려고 애썼구나.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자면, 선동가들이 너희들에게 뭐라고 말했건 난 분명히 너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너는 충순한 아이였고, 훌륭한 부모였으며, 자선사업에 돈을 냈고, 눈먼 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었다. 네가 태어난 조건을 감안컨대, 다른 인간들이 하는 만큼 한 셈이다. 널 누가 봐주고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하면 내가 네 인생에, 네 관련 서류 일체에, 그리고 네 이마에 '봤기에 인정함' 도장을 찍어주지. 그런데 정말 우리 서로 솔직히 터놓고 말 좀 해보자. 네 자신이 인간으로 산 대가로 영생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고작 50년에서 백 년만 투자한 주제에 대박을 노리는 심보가 막돼먹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아무래도 너희 종은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한 서머싯 몸이 제대로 본 것 같구나."(315~316)

 

신에 대한 비아냥은 사실은 인간에 대한 비아냥이겠지만, 그 자신이 무신론자였다가 불가지론자로 전향했을 정도로 신에 대한 생각은 깊습니다.

그것은, 이 에세이의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누가 신에 관해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9)

 

철학, 문학, 음악, 과학, 윤리 등으로 아주 자유롭구나 싶기도 하고 좀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책을 읽는 인간의 생각이 좁아서인지 문화가 달라서인지 때로는 얼른 파악되지 않는 부분, 아무리 들여다봐도 파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계획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 그리고 책이 아닌 음악과 함께하겠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들 동안 이것저것 확인할 게 많다. 우선, 나도 생선 냄새를 풍기게 될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지 확인해볼 것이다. 의식이 새어 나가는지, 그럴 경우 내가 알아차릴 수 있을지 확인할 것이다. 나의 지역 보건의와 함께 그녀가 말한 그 여행을 하게 될지, 그리고 용서를 하고, 기억을 불러내고, 장례식을 계획할 마음이 생기는지도 확인해봐야겠다. 회한의 감정이 내려와 앉는지, 그리고 그런 감정을 몰아낼 수 있을지도. 인간의 삶은 결국 전부 다 하나의 내러티브며 한 편의 훌륭한 소설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안겨준다는 생각에 혹하게 될지, 아니면 기만당하게 될지도.(399~400)

 

 

 

........................................................

1. 『레몬 테이블』
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3.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