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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허희정「파운드케이크」

by 답설재 2017. 1. 10.

 (……)

갯벌을 떠난 다음에도 자꾸 걸었어. 갯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너무 멀리 와버린 데다가, 갯벌이 어딘지도 알 수가 없었거든. 자꾸 걷다 보니, 짐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가드레일 너머로 그냥 통째로 던저버렸어. 그땐 정말로 신나는 기분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무거운 게 가벼워지진 않더군. 이상하게 여전히 온몸이 무거웠어. 어쩌면 진흙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방도가 없으니까 일단 걸었어. 걷다 보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지.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자꾸만, 자꾸만 물건들이 커지는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그냥 걸었지. (……)

 

 

월간『현대문학』에서 허희정1의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2 마지막 부분입니다.

 

 

 

 

 

 

작가가 들으면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삶이란, 아니라면 내 삶이란 결국 이런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때로, 이렇게, 지금의 내 생각이나 사정의 실체를 나 대신 꺼내어 보여주고 정리하고 요약해주는 글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그걸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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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희정 1989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및 동대학원 재학 중. 2016년 『문학과사회』 등단.
2. 2016년 12월호(127~145),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