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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태준 《문장강화》

by 답설재 2017. 2. 8.

이태준 《문장강화》

필맥, 2010

 

 

 

 

 

 

1

 

1963년쯤, 늦어도 1965년에 읽었어야 할 책입니다.

 

우리에게 국어를 가르치신 박용기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었지만, 교육 체제가 그렇질 못했으니까―지금은? 글쎄요? 그걸 왜 나에게?―선생님인들 우리에게 이 책을 읽힐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정겨운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설명보다 예문(例文)의 양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일일이 사례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상, 정지용, 나도향, 김소월, 이광수, 김기림, 홍명화, 정인보, 민태원, 이희승, 김기진, 염상섭, 주요섭, 현진건, 박종화, 박태원, 이병기, 김동인, 이효석, 김진섭……

 

모교(母校) 교문을 들어선 느낌을 주는 분들을 이런 순서로 늘어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다 적지도 못했습니다. 빠트리지 않고 적어봐야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

 

 

2

 

이상(李霜), 정지용(鄭芝溶)의 작품이 특히 자주 나왔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두 시인의, 처음 읽는 작품도 많았습니다. 이태준 선생은 웬만하면 두 작가의 작품을 예문으로 소개할 작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예문으로 나온 「청춘예찬」(민태원), 「그믐달」(나도향) 같은 작품을 읽을 땐 50여 년 전의 기억들이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이제 와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싶어 했던 것이 쑥스러웠습니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을 16쪽에 걸쳐 길게 인용해준 것도 고마웠습니다.

 

"(……) 부인 송씨 기이하신 신몽(神夢)을 꾸시고 정미 사월 이십삼 일 탄생하시오니 집 위에 서기(瑞氣) 일어나고 산실에 향취옹실(香臭擁室)하여 오래 되도록 없어지지 않으니 부모 지기(知機)하심이 있어 가중(家中)에 말을 내지 못하게 하시더라. 잠깐 장성하시매 정정탁월(亭亭卓越)하사 화월(花月)이 붓그리는 듯 (……)"(341)

 

나는 왜 이런 고전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

 

무얼 배웠는지 입때 깨닫지 못하고 넘어온 단어들, 되살려 쓰면 좋을 단어들 '구경'도 좋았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 말에는 관심할 여유가 없이 목적에만 급해서……, 천천히 단어와 토를 골라 조직에 관심할 여유가……(38)

* 담화로 쓰는 말은 토를 호흡감이 나게 농간을 부려 담화풍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39)

 

그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 싶은 내용도 보였습니다.

 

 

* 유일어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한 플로베르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거니와, 그에게서 배운 모파상도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代用)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하였다.(86)

 

 

* 퇴고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당(唐) 시대의 시인 가도(賈島)의 서경시(敍景詩)다. 이 시의 바깥짝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이 처음에는 승고(僧敲)가 아니라 승퇴월화문(僧推月下門)이었다. 승퇴월하문이 아무리 읊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퇴(推), 밀 퇴자 대신으로 생각해낸 것이 고(敲), 두드릴 고자였다. 그래 승고월하문이라 해보면 이번엔 다시 퇴자에 애챡이 생긴다.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 정하지 못한 채 하루는 노새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노새 위에서도 '퇴로 할까, 고로 할까?'에만 열중했다가 그만 경윤(京尹: 부윤(府尹) 같은 벼슬) 행차가 오는 것에 미쳐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버렸다. 가도는 경윤 앞에 끌리어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또 미처 비켜서지 못한 이유로 '퇴로 할까, 고로 할까?'를 변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윤은 이내 파안대소(破顔大笑)하고 다시 잠깐 생각한 뒤에

"그건 퇴보다 고가 나으니라."

하였다. 경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침 당대 문호 한퇴지(韓退之: 韓愈, 768~824)였다. 서로 이름을 알고 그 자리에서부터 문우(文友)가 되었고, 가도가 승퇴월하문을 한퇴지의 말대로 승고월하문으로 정해버린 것은 물론, 이로부터 후인들이 글 고치는 것을 '퇴고'라 일컫게 된 것이다.(227~228)

 

 

"그래, 그렇구나!'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번역을 거치는 원문은 이미 그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말로만 씌어진 문장이다. 그런데 표현의 가능, 불가능 면은 언어마다 다르다. 나중의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것도 있을 것임은 지당한 이치다. 이 우열감은 하나는 구속이 없이 마음대로 표현한 것이요, 하나는 원문에 구속을 받고 재표현해야 되는 번역, 피번역의 위치관계이지 결코 어느 한 언어와 언어의 본질적 차이는 아니다.(34)

 

소학생들의 글이 문법적으로는 서툴러도 차라리 솔직한 힘이 있는 것은 오직 '처음의 생각'대로, '신선' 채로 써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이라도 고치되 끝까지 구기지 말고 지녀나가야 할 것은 이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신선'이다.(236)

 

 

5

 

《文章講話》, 1939~1940년 간에 국한문 혼용으로 나온 책인데 2008년에 되살려 펴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소개된 책을 50년도 더 지나서 읽은 것이 감격스럽고 왠지 출세를 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는 좋은 시절을 만난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