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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찰스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by 답설재 2017. 2. 14.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코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Henry Charles Bukowski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1998)

찰스 부코스키, 로버트 크럼 그림, 설준규 옮김

모멘토 2015

 

 

 

 

 

  1

 

경마가 없는 날, 정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묘하다. 헤밍웨이1에게 투우가 필요했던 까닭을 난 안다. 그에게 투우는 삶이라는 그림을 끼울 액자 같은 것으로,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으리라. 때때로 그걸 우린 잊어버린다. 기름 값을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등등에 정신이 팔려서,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염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17)2

 

첫 일기의 앞부분이다.

그 뒷부분이 아무래도 민망해서 (……)로 표시하고 말았다.

그의 일기에는 걸핏하면 '씨댕이, 씹새, 씨방새' 같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질3', '맛이 간 여자', '나는 맛이 갔다'는 식의 표현도 예사다.

 

 

  2

 

그렇지만 그 표현이 거슬리진 않는다.

찰스 부카우스키는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어처구니없다"며 외면해 버리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그런 표현들을 눈여겨 봤어도 나는 더 야비해지지 않았다. 야비한 것에 대해 내가 그걸 참는 데는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이런 용어들은 그의 해학, 익살, 풍자를 쉽게 하는 것일까?

경마는 거의 매번 소재가 되고, 그 경마장의 하층민들, 글쓰기, 컴퓨터 작업, 음악, 작가들의 행태, 여자, 책, 영화, 텔레비전…… 그런 것들에 관한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은 참 재미있다. 묘한 맛이 있다. 저렇게 표현하는데도 사색적이고 읽는 나는 더 담담해진다.

 

 

  3

 

단골 소재 중에는 죽음도 있다. 그래서 그가 이 일기에 붙인 제목("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을 두고 번역본에서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이제 내가 집중할 만한 인물은 더 이상 없다. 나 자신에게조차 집중할 수 없다. 버릇처럼 감옥도 들락거려봤고, 문짝도 부숴봤고, 창문도 꺠뜨려봤고, 한 달이면 29일 술을 마셔보기도 했다. 이제 난 이 컴퓨터 앞에 라디오를 켜놓고 앉아 클래식을 듣고 있다. 오늘밤엔 술조차 마시지 않는다. 난 페이스를 조절하는 중이다. 뭘 위해? 여든, 아흔까지 살려고? 죽는 건 신경 안 쓴다…하지만 올해는 아니다. 알겠지?4(119)5

 

이제 난 섬세한 뉘앙스와 미세한 의미 차이에 열중한다. 내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에서 말의 자양분을 얻는다. 이건 근사한 일이다. 이제 난 예전과 다른 종류의 헛소릴 써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돌파구를 찾았군요." 그들이 내게 주로 하는 말이다.

그들이 알아차린 게 뭔지 나도 의식하고 있다. 나도 그걸 느낀다. 말들이 좀 더 단순해지고, 따뜻해지고 어두워졌다. 나는 새로운 원천에서 자양분을 얻고 있다. 죽음에 가깝다는 건 활력소다. 난 온갖 이점을 갖고 있다. 젊은이들에겐 감춰진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난 젊음의 힘에서 노년의 힘으로 옮겨 왔을 뿐이다. 쇠퇴 따윈 없을 거다. 어, 졸린다. 이제 미안하지만 자야겠다. 12시 55분이다. 지껄이다 밤새우겠다. 웃을 수 있을 때 웃어라….(131)6

 

 

  4

 

91년 8월 28일에서 93년 2월 27일 사이의 일기 33편은 길지 않았다. 더 길어도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다.

부카우스키는 어떠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나는 그게 슬펐다.

 

여기엔 작은 발코니가 있고, 문이 열려 있고, 남쪽으로 가는 하버프리웨이를 달리는 차들의 불빛을 볼 수 있다. 저 연이은 불빛들, 저들은 결코 멈추는 법 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저 숱한 사람들. 저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우리 모두는 전부 죽게 돼 있는데 이 무슨 요란법석인가?! 모두 죽게 돼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하건만 그러지 않는다. 우린 하찮은 것들에 겁먹어 기가 꺾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잡아먹힌다.

계속해, 말러. 네 덕분에 이 밤이 황홀해. 멈추지 마, 이 새꺄! 멈추지 말라고!(13)7

 

더구나 이렇게 써놓고 그는 저승으로 갔다(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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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카우스키는 헤밍웨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헤밍웨이는 지나치게 애를 썼다. 애쓴 흔적이 그의 글에서 느껴진다. 그의 글은 딱딱한 덩어리들을 한데 붙여놓은 것 같다. (...) 헤밍웨이는 웃는 법을 몰랐다. 새벽 여섯 시에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유머 감각을 기대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뭔가를 꺾어 이기고 싶어 한다.'(103)

2. 91년 9월 12일 일기 처음 부분.
3. 그대로 옮기기가 민망해서 O로 바꾸어 옮겼습니다.
4.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부카우스키도 이런 생각을 했네? 이건 사실은 누구나,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러면서 죽음을 유보하고 싶어 하지.'
5. 92년 3월 16일 일기 중간 부분.
6. 92년 6월 23일 일기 끝부분.
7. 91년 8월29일 일기 끝부분.